임란후 장식성 퇴조 실용성 강조돼

■ 박성실 단국대 교수, 청주博 특강

우리나라 복식문화는 신라 문무왕대, 임진왜란 전후 등 크게 5단계의 큰 변화를 겪은 것으로 밝혀졌다.

뿐만 아니라 일반인 알고 있는 것과 달리, 명 디자이너였던 조선시대 여인들은 흰색보다 소색(素色·자연색) 저고리나 겹치마를 선호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립청주박문관(관장 민병훈)은 지난 1일 단국대 박성실(전통의상학과) 교수를 초청, '조선시대 여인의 멋과 차림새' 제목의 특강 시간을 가졌다.

▲ 보물 제 672-1호인 소색명주창의와 중요민속자료 제 217-8호 소색명주겹치마 모습이다. 하나같이 소색을 띄고 있다.
이 자리에서 박 교수는 한복 역사의 발자취, 조선 여성복식의 시대별 특징, 여성 복식의 특징에 나타난 멋과 차림새 등을 재미있으면서 쉬운 언어로 설명, 참석자들의 큰 반향을 이끌어 냈다.

그에 따르면 한복의 역사는 대략 2천년 정도로, 삼국시대 성립 시기와 시대적인 맥락을 함께 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복식의 기본형은 고구려 고분벽화의 인물 풍속도를 통해 잘 관찰되고 있다.

이후 우리나라 복식문화는 한반도 내부의 자체 역량과 여기에 외세적인 요인이 가미되면서 5단계의 큰 변화를 겪게 된다.

그는 이의 시대적인 마디로 ▶신라 문무왕대 ▶고려시대 몽골풍 유행 ▶고려 공민왕의 명나라 복식제도 수용 ▶임진왜란 전후 ▶조선 고종~순종대의 양복화 시작 등을 거론했다.

신라 문무왕은 여성들에게 당제(唐制) 복식을 따를 것을 지시, 우리나라 복식문화에 처음으로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러나 이는 귀족에 한정된 것이어서 당시 복식문화는 이원구조를 형성하게 된다.

몽골이 1세기 가까이 한반도를 지배하면서 우리나라에 몽골풍으로 불리는 복식문화가 대대적으로 수입됐다. 지금도 잔존하고 있는 족두리, 연지, 장도 등은 모두 이때 들어온 것이다. 반대로 몽골에도 '고려양'으로 불리는 의복, 음식 등의 문화가 유행했다.

고려말인 공민왕대는 우리나라 복식사에 또 한번의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다. 공민왕은 한족 명나라가 동북아의 새로운 맹주로 부상하자 당시 관료들의 관복을 명제(明制)에 따르도록 명령한다. 세번째 대변화이다.

이후 조선시대들어서도 명제를 따르는 복식문화는 그대로 유지됐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우리나라 복식문화에 네번째 변화가 일어났다.

종전까지는 장식성이 강했으나 임란을 거치면서 저고리가 작아지고 옷감을 적게 사용하는 등 실용성이 크게 강조됐다.

마지막 5번째 변화는 조선 고종~순종대에 일어났다. 개화를 할 수 밖에 없었던 당시 조정은 단발령과 함께 문관의 관복을 이른바 양복으로 교체했다. 이로써 통일신라후 조선말까지 유지되던 한복은 점차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한편 조선시대 여인들은 일반의 생각과 달리 흰색이 아닌 소색 저고리나 겹치마를 더 선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그 근거로 16~18세기 출토된 보물 제 672-1호, 청주한씨, 파평윤씨 등 대부분의 저고리와 겹치마가 소색인 점을 들었다.

박 교수는 결론으로 "한복에는 솜씨, 맵씨, 마음씨 등 이른바 '3씨'가 담겨져 있다"며 "이것이 궁극적으로 지향한 것은 인격미의 발현이었다"고 말했다.


■ 우리나라 복식 변천사

단계시기내용
1단계신라 문무왕대당제에 따를 것을 지시
2단계고려 속국시기몽골풍 크게 유행
3단계고려 공민왕명제를 따를 것을 지시
4단계임진왜란 전후실용적인 복식으로 전환
5단계조선 고종~순종대양복 처음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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