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석대 노재현 교수 논문서 밝혀

조선시대 거유인 퇴계 이황은 단양팔경을 단순 명승지가 아닌, 심정(心情)을 수양하는 정신적 순례지로 여긴 것으로 밝혀졌다.

뿐만 아니라 퇴계는 팔경 개개의 이름을 가장 많이 작명하는 등 조선시대 선비 중 단양팔경을 가장 사랑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석대 노재현(조경도시디자인학과) 교수가 최근 '단양팔경의 활인성과 경승형성화 전개 양상' 논문을 한국전통조경학회지 논문을 통해 발표했다.

▲ 퇴계 이황은 단양팔경을 단순 명승지가 아닌, 심정(心情)을 수양하는 정신적 순례지로 여겼다. 김홍도의 단양팔경 옥순봉 그림.
논문에 따르면 단양팔경은 하루 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닌, 여러 단계를 발전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노 교수는 그 발전 단계를 '16세기-구곡문화 수용기', '17세기-단양팔경의 전환기', '18세기-단양팔경 부흥기', '19세게-단양팔경 정착기' 등으로 분류했다.

이와 관련, 노 교수의 논문은 단양팔경이 '계상사경'(溪上四景), '강상사경'(江上四景)으로 구체성을 갖춘 시기와 인물을 17세기의 퇴계 이황으로 지목했다.

계상사경은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 사인암을, 강상사경은 도담삼봉, 석문, 옥순봉, 구담봉 등을 의미하고 있다.

노 교수는 연구논문 '忠淸北道 樓亭記文과 題詠'을 인용, "퇴계는 단양팔경의 경관에 심취, 단양군수를 자청할 정도로 단양을 사랑했다"며 "구담봉, 옥순봉, 하선암의 이름은 퇴계가 작명했다"고 밝혔다.

이밖에 논문은 사인암은 임재광, 중선암은 김수종, 상선암은 권상하가 작명했다고 밝히고 있다. <상세내용 표 참조>이처럼 퇴계가 조선시대 많은 선비 중 단양팔경을 유독 사랑한 것은 '관유'(觀遊)를 '활인심방'(活人心方), 정신적 순례지로 생각했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관유는 유람하면서 구경하는 것을, 활인심방은 자연에서 심정을 다스려 즐거움을 얻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노 교수는 "이후 단양팔경은 이황의 유생들에 의해 자연친화와 호연지기의 장이자 산수의 거점으로 우뚝서게 된다"며 "여기에는 남한강 수로라는 접근의 용이성도 큰 몫을 했다"고 밝혔다.

한편 단양팔경은 조선 선비들의 정신적 순례지 외에도 도교(道敎)적으로도 숭배의 대상이 된 것으로 보인다. 노 교수는 그 근거로 '鍊丹調陽'(연단조양)이라는 표현을 지목했다.

이는 '단양이 살기에 매우 좋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문장으로 '鍊丹'은 신선들이 먹었다는 환약, '調陽'은 '햇빛이 골고루 퍼진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노 교수는 결론으로 "단양팔경은 다른 지자체의 팔경, 십경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랜 역사성과 철학성을 지니고 있다"며 "조선 선비들이 단양팔경을 금강산 다음으로 진경산수 공간으로 여긴 것은 우연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단양팔경 작명자와 시기
단양팔경명명자명명시기비고
도담삼봉?15세기 이전정도전 관련설
석문??
구담봉이황1548년단양 산수기
옥순봉이황丹丘洞門 각자
사인암임재광성종대단양군수
하선암이황1501~1570년단양 산수기
중선암김수중1624~1701년谷雲九曲 명명자
상선암권상하1641~17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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