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약은 꼭 지켜야 하는가

"선거공약은 반드시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정치인의 올바른 자세다. 그러나 꼭 지켜야 할 공약이 있는 반면, 오히려 지키지 않는 것이 좋은 공약도 있을 수 있다."

서울대 경제학부 이준구 교수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걱정이 앞서는 대운하 산업' 제목의 이 같은 글이 이 아침에 깊은 상념(想念)에 젖어들게 한다.

이 교수는 이 글을 통해 다수결에 기초한 대의민주제의 문제점을, 그리고 선거에서 이겼다는 사실이 모든 공약을 그대로 실천해도 좋다는 뜻은 아니라며 대운하 산업의 왜곡된 경제적 타당성 평가 문제와 대운하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점, 민자유치의 허구성, 동기의 순수성 등을 조목조목 짚었다.

#개발이냐 보존이냐

개발이냐 보존이냐 하는 문제는 이 시대의 영원한 화두다.

그러나 자연은 개발보다 보존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선진국 형 패러다임이다.

원래의 상태 그대로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 당선인 자신이 서울시장 시절 청계천을 복개해 시민들에게 되돌려주었던 것도 이런 패러다임을 실천한 것이다.

청계천 복개사업에는 자연의 복원이라는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

그런데 지금 그는 자연을 거스르는 대운하 사업에 시동을 걸려하고 있다.

#우려되는 요인들

대운하 산업이 주변 생태계를 얼마나 파괴할 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댐을 하나 조성해도 인근 지역의 기후가 바뀌고 안개지수가 달라진다.

하물며 국토 산하 전체의 물줄기를 바꾸는 일이다.

기상이변과 같은 예기치 못한 사태가 주변 생태계에 미증유의 각종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다.

3천만 명의 식수원인 상수원 오염은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태안반도에서 벌어진 기름유출 사고로 얼마나 많은 서해안 어민들이 지금 고통을 겪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라.

미국의 카트리나에서 발생한 홍수의 직접적 원인도 도시근처에 있는 운하가 범람해서 유발된 사고였다.

산업 사회에서 정보 사회로 기본적인 틀이 바뀌면서 파는 물건들도 달라지고 있다.

스필버그 감독이 제작한 영화 한 편이 우리나라의 연간 자동차 수출량과 맞먹는다는 사실이 이를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삼류는 제품을 팔지만, 이류는 지식을 팔고, 일류는 감동을 판다고 했다.

파는 물건이 제품에서 지식으로, 다시 문화로 패러다임이 이미 바뀌고 있다.

삼류에 해당되는 제품을, 그것도 작고 가벼운 반도체도 아닌 대단위 물류를 운반하려고 운하를 파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일 수 있다.

물류 운반은 시간이 비용절감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최근 한 일간지가 컨테이너 업체 60곳의 물류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장래의 운하이용 여부를 익명으로 조사한 결과 무려 57%가 '경부운하가 건설돼도 이용하지 않겠다.'고 응답했고, 대운하의 주요 고객이 될 국내 컨테이너와 벌크화물 운송업체(화주)의 70% 이상이 운하를 건설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국민적 공감대부터 형성해야

대운하 산업이 생태계를 교란시킨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를 얼마나 최소화하면서 경제적 이익을 찾아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 된다.

경제적 이익보다 반사적인 환경파괴나 홍수 등 재난의 우려가 더 크다면 공약을 파기할 수 있는 과감한 자세도 필요하다.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고 무대 뒤로 사라지면 그만이지만 후손들은 이곳에 둥지를 틀고 영원히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에 대운하 강행 추진 의지가 확고하다면 대국민 공청회를 통해 국민적 공감대부터 형성해야 한다.

그리고 여론 조사를 거쳐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국가시책 사업으로 추진할 지 여부를 다시 신중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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