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준 <제2사회부장>
영국의 시인 바이런은 '어느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유명해졌다'는 말을 남겼다. 지방정가에서도 비숫한 말이 회자된적이 있었다.

지금은 작고한 변종석 전 청원군수가 '새벽에 잠을 깨니 당선돼 있었다'는 말이 그것이다.

지난 1995년 첫 지방동시선거에서 자민련 간판으로 출마한 변 전군수는 충북축구협회회장을 맡고있던 체육계 인사로 사실 당선가능성이 매우 낮았다.

본인도 당선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 상대는 선거직전까지 관선군수를 지낸 O모씨로 도내 최다득표를 노릴만큼 자신이 있었다.

이때문에 JP의 공천으로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뒤늦게 출마한 변 전군수는 개표방송도 보지않고 일찍 잠들었다가 새벽에 당선됐다는 말을 들은 것이다.

당시 자민련 녹색바람의 위력을 말해주는 에피소드는 선거에서 '바람의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

'바람의 위력'은 이뿐만 아니다. 제16대 총선이 끝난뒤 충북사람들이 광주나 전라도에 가면 제대로 대접을 받았다는 말이 나돌았다. 비호남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전과 함께 유이(有二)하게 충북에서 열린우리당이 석권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호남사람들이 충청도 사람들에게 각별한 정을 느낄만도 했다.

노무현대통령 탄핵심판 직후에 열린 총선이기도 했지만 충북이 열린우리당의 상징색인 노란색으로 물들은 것은 지역주민들에게도 화젯거리였다. 보수성향인 충북인의 정서와는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충북지사로서 전화위복의 길을 걷고있지만 당시 해양수산부장관을 지낸 재선의원으로 지역구에서 아성을 구축했다는 말을 들었던 정우택지사(한나라당)도 고작 한달간 선거운동에 매달렸던 김종률(통합민주당)의원에게 맥없이 무너졌다.

'경륜'도 '인물'도 바람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열린우리당 돌풍으로 홍재형(청주 상당) 의원과 이용희(보은·옥천·영동)의원을 제외한 6명(1명은 비례대표)의 정치신인이 손쉽게 여의도에 입성했다.

선거에서 바람의 영향은 비단 충북만의 현상으로 한정지을수 없다. 서슬이 시퍼렀던 전두환정권시절에도 YS와 DJ가 손잡은 민주화추진협의회가 신당을 창당해 돌풍을 일으킨적도 있다. 2004년 총선때도 탄핵사태는 '여소야대'를 하루아침에 '여대야소'로 만들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충북은 심하다. 선거때마다 민심의 향방이 갈대처럼 흔들리기 때문이다.

외환위기가 발생했던 1997년 15대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DJ에게 패한직후 한나라당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이 대거 탈당해 자민련행을 선택하는 바람에 이듬해에 열린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은 시장·군수와 도의원 후보조차 제대로 못내는 현상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때문에 이번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치열한 공천경쟁을 보면 변화무쌍한 시류를 엿볼수 있다. 공천신청을 내기위해 예비후보들이 몰리는 바람에 한나라당사가 대학입시 창구에 못지않을 정도로 붐비기도 했다. 오죽하면 본선보다 공천장 따기가 더 힘들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처럼 지역의 정치적인 민심이 선거때마다 이러저리 쏠리다보니 '인물'보다는 '정당'이 당선의 우선 순위가 되버렸다.

아무리 '능력과 비전, 도덕성'을 갖췄거나 상대적으로 더 낫다는 평이 있어도 '바람'의 영향에서 자유로울수 없는 것이 우리 지역의 선거풍토가 되버린 것이다.

이러니 정치적인 역량을 갖춘 인재가 나올 수 없고 중앙정계의 실력자가 탄생되기도 힘들다. 우리고장의 정치발전을 위해서는 '정당'보다는 '인물'을 선택해야 한다.

특히 이번총선에서 주요정당들이 '개혁공천'이라는 이름으로 '권력투쟁'을 벌여 국민들을 크게 실망시킨것을 감안하면 더 그렇다. 갈대처럼 바람에 의해 흔들리는 '표심'은 우리의 선거문화를 퇴행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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