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亞 구석기학회 학술대회

일본열도 화산재가 선사시대 때 최소 두 차례 규수에서 한반도까지 날아 왔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특히 그것을 입증하는 지층이 청원군 강외면 만수리 유적이어서, 일대 유적층에 대한 보다 종합적인 고찰이 요구되고 있다.

제 1회 아시아 구석기학회(APA) 창립총회 및 국제 학술대회가 지난 6월 22일~7월 2일 11일 동안 러시아 알타이 지역의 데니소바에서 열렸다.

한-러 구석기 학자들이 주축이 돼 만들어진 이번 1회 학술대회에는 두 나라 외에 중국, 일본, 우크리이나, 체코 공화국 등 아시아와 유럽권의 9개국 학자들이 참여했다.

한국에서는 이융조(충북대 명예), 배기동(한양대), 이헌종(국립 목포대), 한창균(한남대), 이형우(전북대) 교수 등이 참석했다.

이와 관련, 이융조 명예교수가 발표한 '만수리 구석기 유적의 조사연구' 논문에 일본 학자들이 큰 관심을 표명하면서 참석한 구석기 학자들 사이에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청원 만수리 유적은 지난해 발굴 당시 주먹도끼, 주먹찌르개가 출토되는 등 전기 구석기 문화층(70~10만년)인 것은 확실하나, 형성 연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론이 존재해 왔다.

이에 대해 만수리 시료를 채취·분석한 일본 도시샤(同志社) 대학 미쯔후지 교수팀은 "일본 규수에서 2만5천년과 9만5천년 전에 대규모 화산 폭발이 있었고, 이때 만들어진 화산재 성분이 청원 만수리 유적층에서 검출됐다"고 밝혔다.

미쯔후지 교수팀은 "OSL(광여기루미니센스) 측정법으로 분석을 한 결과, 만수리 3지층에서 9만5천년 전의 화산재, 나머지 1개 지층에서는 2만5천년 전의 일본 규수지역 화산재 성분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9만5천년 전과 10만년 전은 거의 같은 연대값으로, 이번 일본학자의 발표를 통해서도 만수리 유적이 유물뿐만 아니라 시대적으로도 전기 구식기 문화층임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셈이다.

그러나 2만5천년 지층이 9만5천년 지층보다 아래 쪽에 위치하는 점은 또 다른 논쟁거리가 됐다. 고고학 층서법은 특이 사유가 없는 한 아래로 내려갈 수록 지층 연대가 오래된 것으로 보고 있다.

▲ 일본열도 화산재가 선사시대 때 최소 두 차례 규수에서 한반도까지 날아 왔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화산폭발 모습으로 폼뻬이 멸망 원인이 되기도 했다. / 자료사진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이 부분은 만수리 유적층에 존재하는 단구(段丘·terrace)가 설명해 준다"고 밝혔다. 단구는 수면의 상승과 땅의 침강으로 인해 급사면 내지 새로운 퇴적층이 생기는 경우를 일컫는다.

이 교수는 "단구가 형성되면 지층 역전현상이 심심찮게 일어난다"며 "이 경우 보다 오래된 지층이 윗층에서 발견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는 별개로 만수리 유적층이 주먹찌르개, 주먹도끼 등 층서적인 구석기 문화를 가진 지층임이 이번 발표논문을 통해 확인됐다.

이 교수는 "국내 구석기 문화층에서는 주먹찌르개와 주먹도끼가 혼합적으로 나왔으나, 두 석기가 시대순으로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이는 당시 구석기인들이 장구한 시간에 걸쳐 만수리 지역에 살았음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한편 배기동 교수는 "협곡 지형에서는 지층 역전현상이 자주 일어난다", 한창균 교수는 "한반서 후기 구석기 연한을 종전 3만년 전에서 4만년 전으로 올려 잡아야 한다"고 발표, 또 다른 관심을 끌었다.

이밖에 이형우 교수는 "구석기인들이 양날떼기를 한 것은 무의식적인 것이 아닌, 이미 대칭의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주장, 참석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 조혁연

▶ 주먹도끼와 주먹찌르개

주먹도끼는 전기구석기시대의 대표적인 뗀석기로, 양면핵석기(兩面核石器)라고도 한다. 대략 100만년전쯤부터 10만년전까지 오랫동안 인류의 주요 도구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비해 주먹찌르개는 주로 한쪽 면만 떼어낸 모습을 보인다. 끝이 뾰족하고 그 아래로 내려올수록 폭이 넓어지는 특징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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