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쪽에 세로선·홈 존재 기와 동파·변형 막아

백종오 충주대 교수, 학술서 편찬

아무렇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고구려 기와에 그 시대의 과학, 역사, 종교성이 듬뿍 담겨져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특히 이번 주장은 충주 등 충북도내 북부권에 고구려 유적이 많이 남아 있어, 학계는 물론 지역민의 관심까지 끌고 있다.

충주대 백종오(교양학부·경기도 문화재전문위원) 교수가 얼마전 고구려 기와의 성립과 왕권 학술서를 주류성 출판사 이름으로 펴냈다.

390여쪽 장문인 이번 학술서는 고구려 기와의 기원과 종류, 고구려 와당의 형성과 지역적 특징, 고구려 평기와의 제작기법 고찰, 고구려 기와의 변천과 왕권 등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 고구려 기와 중 수막새 모습이다. 고구려 시대는 도교가 성행했을 때는 구름문양, 불교가 발달했을 때는 연꽃문양(사진) 와 당이 많이 생산됐다. 옆은 이해를 돕기위한 기와 종류 그림.
그는 이번 연구를 위해 북한지역 자료는 물론 유적지가 산포한 중국 집안현 등을 방문, 적지 않은 고구려 기와를 관찰·수집했다.

그 결과, ▶고구려 기와에는 당시의 과학성이 담겨져 있고 ▶또 특징인 적색은 왕권과 관련이 있으며 ▶와당 문양이 권운문에서 연화문으로 바뀐 것은 당시 종교상을 반영된 것으로 밝혔다.

백 교수는 "고구려 기와에는 모골연결흔과 즙와흔 요철 현상이 뚜렷하게 관찰된다"며 "이는 고구려 지역의 겨울이 길고 눈이 많은 기후가 가져올 수 있는 기와 동파와 변형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와통(瓦桶)의 일종인 '모골'은 암키와를 만드는 나무(주로 대나무) 조각의 연결틀로 이때 세로선을 많이 넣으면 이것이 만들어진 후 배수 역할을 하게 된다. '즙와흔'은 기와를 꿰맞출 때 사용하기 위한 요철로, 이것을 맞물려 조립하면 기와의 변형을 막을 수 있다.

그는 고구려 기와의 특징인 적색계열 기와에 대해서는 "적색은 음양오행설에서 왕조의 정치권력을 상징한다"며 따라서 "당시 고구려 기와공이 적색 기와를 의도적으로 구워낸 것은 중국과 동등한 입장에 있음을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조사 결과, 관청 사찰 등에 제한적으로 사용된 고구려 기와의 95%(임진강 유역 기준)는 적색계열로 이는 당시 기와공이 선별적으로 태토(재료흙)를 사용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백 교수는 와당 문양과 당시 종교상에 대해서도 언급, "도교가 성행했을 때는 권운문(구름문양)이, 불교가 발달했을 때는 연화문(연꽃문양)이 주로 나타난다"고 밝혔다.

'와당'은 암막새와 수막새를 함께 일컫는 기와 용어로, 암키와나 수키와 등 평기와에 비해 장식성 문양이 강하게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다.

그는 "고구려에서 불교가 가장 장려됐던 때는 고국양왕 때로 이 시기에 연화문 와당이 집중적으로 나타난다"며 "그러나 이 연화문은 연개소문 독재정권이 등장하면서 기하문 와당으로 바뀌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고 밝혔다.

백 교수는 결론으로 "고구려 장인들은 결코 기와나 와당을 되는대로 만들지 않았다"며 "고구려 기와는 그 문양 안에 고구려 왕실과 왕권의 내면적 가치관과 정치적 지향점이 담고 있는 등 문화적 상징체계의 산물"이라고 밝혔다. / 조혁연

chohy@jbnews.com



■ 와통(瓦桶)은

기와를 만드는 틀의 일종으로, 암키와와 수키와에 따라 그 모양과 공정이 차이가 난다. 암키와는 모골와통(죽간을 여러개 이은 모양)에 점토판을 붙인 후 이것이 굳으면 4등분을 해 보통 4장을 얻었다. 반면 수키와에는 원통와통을 사용했다. 이는 말 그대로 원형형 와통에 점토판을 붙여 기와를 얻는 방법으로 보통 2장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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