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빗살무늬 토기는 저장용으로만 사용

▲ 한반도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용도에 따라 식생활용과 저장용 등 3가지 토기를 혼용해서 사용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중 빗살무늬토기(사진)는 주로 저장용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신석기학회 논문

한반도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용도에 따라 식생활용과 저장용 등 3가지 토기를 혼용해서 사용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전 기전문화재연구원 김영준 씨가 얼마전 한국신석기학회에 '우리나라 중·서부지역의 신석기시대 무문양토기 연구'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지금까지 국내 학계에는 '한반도 신석기인=빗살무늬토기 사용'이 등식처럼 여겨져 왔다. 무문양토기는 청동기시대의 무문(無紋)토기와는 다른 것으로, 주로 한반도 중·서부지역에서 신석기 후기 문화층에서 출토되는 양상을 보여왔다.

때문에 학계에서는 ▶빗살무늬토기인과 무문양 토기인이 서로 다른 문화를 지니고 있었고 ▶이중 무문양토기가 청동기 무문토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과도기적 역할을 한 것으로 봐왔다.

그러나 이 설은 신석기시대 같은 문화층에서 무문양토기가 공반(함께 출토됨)되게 출토되는 사례를 잘 설명하지 못했다. 고고학 이론상 같은 층위의 문화물질은 동시대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대해 김 연구원은 ▶신석기 무문양토기는 식생활용으로 봐야 하고 ▶반면 같은 시기의 빗살무늬토기는 저장용으로 봐야 하며 ▶따라서 무문양과 빗살무늬를 사용한 집단은 문화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주장,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이번 논문을 준비하기 위해 청원 쌍청리, 서울 암사동, 미사리, 태안 대죽리, 대전 둔산 등 신석기 문화층에서 출토된 빗살무늬토기와 무문양토기의 부피(용량)를 측정했다.

신석기 토기 용량 측정은 실험고고학 차원에서 과거에도 여러차례 시도됐다. 그러나 종전에 사용된 것은 이른바 '원뿔체적' 측정으로, 내부 곡선으로 처리된 공간은 잘 측정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사용된 측정법은 이른바 'Maple7.0' 방법으로 내부 부피를 100% 측정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그 결과, 내부체적 0~1ℓ 용량에서는 무문양 토기만, 10~40ℓ의 큰 용량에는 빗살무늬토기만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1~10ℓ 사이에는 무문양과 빗살무늬토기가 혼재하는 것으로 관찰됐다.

이에 대해 김 연구원은 "크기가 작은 무문양토기는 식생활 용기로, 크기가 큰 빗살무늬토기는 갈무리(저장) 용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며 "반면 중간 크기(1~10ℓ)는 식생활용과 저장용을 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는 이같은 관찰을 토대로 "같은 시기 토기이면서 왜 무문양 토기에 비해 빗살무늬토기 출토량이 상대적으로 많은가"라는 물음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자주 사용하다보니 파손이 잦았고 따라서 파손이 잦을 점을 고려, 신석기 늦은 시기로 갈수록 문양을 넣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무문양 토기의 출토비율도 상대적으로 낮은 점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김 연구원이 이번 논문은 지난 90년대 중반 청원군 쌍청리에서 발견된 토기가 "신석기 편년을 가지면서 왜 빗살무늬 문양이 없는가"라는 그 동안의 궁금증을 상당부분 해소시켜 주고 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쌍청리 무문양토기는 5~10ℓ 용량이기 때문에 식생활과 저장용을 겸용한 것이 된다. / 조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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