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원 노산리 구석기유적발굴현장서 2차 설명회

5만년전 금강유역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청원군 현도면 노산리 구석기 유적 발굴로 그 실체가 점점 벗겨지고 있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원장 이융조·충북대 명예교수)은 지난 17일 노산리 발굴현장에서 2차 설명회를 가졌다. 선사문화연구원은 지난 9월 중순에 1차 설명회를 가졌으나 이날 설명회는 한층 진전되고 구체화된 내용을 담고 있다.

▲ 5만년 전까지도 당시 금강유역 사람들은 여전히 크고 무거운 주먹도끼(사진)를 주요 연모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선사문화연구원측은 이날 설명회에서 ▶문화층 연대가 당초 알려졌던 것보다 훨씬 이른 5만년 이전으로 올라가고 ▶돌무더기는 화덕 유구로 보이며 ▶이때 사용된 땔감은 상수리나무였다 등의 내용을 추가로 발표했다.

또 석영 자갈돌 돌감의 주먹도끼가 당시에도 주요 연모로 광범위하게 사용된 점이 주요 특징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밖에 산화철층이 발견된 점은 당시 고기후를 연구하는데 '어떤 정보'를 갖고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이원장은 "구석기 화덕 유구는 한데 유적지에서 종종 발견되나 5만년을 넘는 것은 없었다"며 "따라서 이번 화덕 유구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한데 화덕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한데'는 야외, 노지의 순우리말로, 동굴유적과 대비되는 개념을 지니고 있다.

주먹도끼가 비교적 늦인 시기인 5만년 전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된 점도 다소 이례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원장은 "당시 사람들은 금강유역 주변에 석영 자갈돌과 어족자원이 풍부하게 분포하다 보니 매우 늦은 시기까지 새 연모 개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 같다"며 "이는 공주 석장리, 청원 만수리, 대전 용호동 등 금강유역 본류 유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밝혔다.

산화철층이 발견된 것은 금강유역이 마지막 간빙기(12~7만년전)에 매우 더운 기후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과학적인 규명 작업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따라서 화덕자리에서 출토된 상수리나무 숯과 연계, 당시 고기후를 규명하는데 박차를 가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상수리나무 숯을 연구할 경우 나이테는 물론 당시 강우량, 연평균 기온 등도 규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상을 종합하면 5만년전 금강유역 사람들은 ▶여전히 크고 무거운 주먹도끼를 연모로 사용했고 ▶화덕에 둘러앉아 상수리나무 등으로 불을 피웠으며 ▶금강을 어로생활의 중요한 공간으로 활용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역으로 금강이 풍부한 먹거리 공급처 역할을 하면서 돌날떼기 석기와 같은 하이테크 개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함께 발견된 반암은 돌날떼기가 가능하기 때문에 하이테크의 주요 신소재가 될 수 있으나 당시 사람들은 이의 개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구석기 문화 흐름상 2만년전을 전후로 해서 등장한 돌날떼기 수법의 좀돌날 석기는 인류 문화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다 준바 있다.

따라서 이번 노산리 발굴은 옛사람들이 '작고 날카로우며 속도를 낼 수 있는 석기가 훨씬 파괴력이 크다'는 것을 인식하는데 수만년 정도가 걸렸음을 보여주고 있다.

/ 조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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