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압박에도 재무건정성 악화 우려 '모르쇠'

금융위기로 인한 신용경색으로 정부가 각종 중소기업 유동성 지원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은행들이 지역 중소기업 대출을 기피하고 있어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다.

은행들은 경기침체로 중소기업 대출이 늘면 부실자산이 증가, 재무 건전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10월중 금융시장 동향'을 보면 지난달 은행권의 중기대출 증가액은 2조5천698억원 증가하는데 그쳤다. 이는 9월(1조8천587억원)에 비해서는 소폭 증가했지만 여전히 저조하다.

은행권의 중기대출 증가액은 지난 5월 5조8천억원, 6월 6조1천억원, 7월 5조5천억원으로 5~6조원 수준을 유지했으나, 8월 1조8천억원으로 급감, 9월에도 1조9천억원으로 2조원을 밑돌았다.

정부는 지난달 중기 자금난을 덜어주고자 은행들로 하여금 중소기업을 4개 등급으로 나눠 차등 지원토록 하고 은행 경영실태 평가 때 중기 지원 실적에 대한 평가 비중 등을 높이겠다며 은행을 압박했다.

이와 함께 한국은행도 지난달 23일 총액한도대출 규모를 기존의 6조5천억원에서 9조원으로 2조5천억원 증액했으나, 은행들은 중기대출에 소극적이다.

은행들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등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건전성 지표를 지키면서 중기대출을 늘리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은 자기자본에 대비 위험자산 비중을 보여주는 건전성 지표로 현재 감독당국이 정한 의무 비율은 8% 선이지만 통상 10%를 넘어야 우량은행으로 평가한다.

BIS 비율이 8% 밑으로 떨어지면 감독당국으로부터 부실여신에 대한 강제상각이나 외화자산 매각, 신규 여신 제한 등의 제재를 받을 수 있고 대외적으로는 은행의 신뢰도가 낮아져 자금조달 비용이 커질 수 있다.

최근 3분기 실적 발표를 보면 국민은행의 BIS 비율이 9.76%로 전분기의 12.45%에 비해 크게 떨어졌고 신한은행도 12.50%에서 11.90%로 주저앉았다.

금융위기 여파로 은행권에서는 요즘 중소기업 대출을 곧 부실채권으로 인식하는 분위기다. 정부가 나서서 '중소기업이 나라 경제의 핵심'이라며 중소기업 지원을 강조하고 있지만 은행권은 '제 살기 바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실제로 청원 중소제조사인 A사는 최근 은행권 대출을 못 받아 전전긍긍하고 있다.

원자재 수입가격이 폭등하면서 경영난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 은행권으로까지 전달된 것이다. 시중은행에선 대출 상담도 받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캐피탈 등 제2금융권 5~6곳을 찾아가 대출을 졸랐지만 모두 퇴짜를 맞았다.

청주에서 건축자재를 생산하는 H기업도 요즘 피가 마르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핵심 자재 일부를 대기업에서 가져와 완제품을 조립하는데 납품대금 결제를 두 번이나 미루다 보니 자재 공급이 끊겨 공장을 못 돌리고 있는 것.

이에 대해 지역 금융권 관계자는 "연말 은행채 만기를 앞두고 있어 자금을 확보해야 하는 등 중기 유동성 지원에 여유가 없는 상황이다"고 해명했다.

/ 이민우

minu@jb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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