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규식 / 한남대 교수, 문화평론가

미국 네바다주(州) 라스베가스에 대한 오래된 고정관념은 세계적으로 거의 비슷하다. 도박, 환락과 소비, 마피아가 창궐하고 온갖 범죄가 만연한 불안한 도시... 좀 더 나아가면 소돔과 고모라같은 악의 소굴로 비화되어 곧 멸망할듯 극단으로 치닫기도 한다.

현지 교민들에 의하면 한국이나 미국 타도시에서 라스베가스를 찾은 우리나라 목회자들 중 일부는 라스베가스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은혜를 주십사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을 종종 본다고 한다. 이 도시에는 죄인들만 득실거리고 모든 사람들이 타락하고 노름만 일삼는 곳으로 생각한 결과이다. 편견의 결과는 이렇게 몰이해와 독선으로 확대된다.

라스베가스는 1905년 도시탄생 이후 전세계적으로 드문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특히 1931년 네바다주가 도박을 합법화하고 인근에 후버댐이 착공되면서 라스베가스는 전환기를 맞는다. 후버댐의 무궁무진한 물과 전력을 바탕으로 사막 한복판 라스베가스의 번성은 가능했다. 통계에 의하면 라스베가스 관광 수입중 카지노의 비중은 30% 미만이라고 한다. 시 당국도 도시 이미지 혁신차원에서 카지노 의존을 줄이고 컨벤션, 휴양, 쇼핑, 인터테인먼트 그리고 특히 가족단위의 관광분야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12월 22일 문을 연 앙코르 라스베가스 호텔은 호텔 재벌 스티브 윈이 23억 달러를 투입, 심혈을 기울여 기획했는데 관심을 끄는 점은 카지노가 이제는 더 이상 이 호텔의 중심, 중추적 시설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만 상대적으로 나이트 클럽이나 바, 스파, 식당 같은 부대시설을 더욱 세심하게 꾸몄고 휴식과 인터테인먼트라는 스티브 윈의 경영철학이 비교적 충실하게 반영되었다는 평이다. 스티브 윈은 볼만한 쇼를 과감하게 호텔 외부로 옮겨 화산쇼, 분수쇼 같은 대규모 볼거리를 무료로 보여주는 발상의 전환을 비롯해 카지노에 치중되던 라스베가스의 이미지 개선에 크게 기여했다.

그동안 공들여 조성한 여러 호텔들을 과감하게 매각하고 그 자금으로 새로운 컨셉의 호텔을 건립하는 등 승부사적 기질의 경영능력은 대단하다.

부가가치가 높은 컨벤션 산업, 가족관광을 겨냥한 테마파크와 쇼핑 스파와 외식 그리고 인터테인먼트 산업의 고급화는 카지노의 한계를 예상한 라스베가스의 생존전략에 다름아니다. 무엇보다 은퇴후 노후를 보내기 위해 실버층이 이주해오는 역동적이고 살기좋은 도시임에도 카지노의 그늘을 덧씌워 환락, 도박의 도시로 매도할 수 있을까.

1980년대 이후 호텔 개발의 선두주자 스티브 윈이 시도하는 발상의 전환은 그래서 주목할만하다. 도박의 도시로부터 중산층 가정을 대상으로 하는 패밀리 리조트로 변모시키려는 야심에 찬 계획을 실천중이다. 카지노의 비중을 줄이고 가능하다면 앞으로는 호텔에서 카지노를 없앨 예정이라는데 아직은 자금순환을 위해 카지노 수익금이 필요하다고 윈은 이야기한다. 나아가 그는 영혼의 쉼터를 제공한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다분히 동양적, 불교적인 발상이다.

라스베가스의 상징인 초호화 호텔의 경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멀쩡한 건물을 고객의 취향과 시대요구에 맞지않는다는 이유로 헐어버리고 새로 짓는 물량공세 경쟁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그러나 카지노 산업의 한계를 이미 간파하고 호텔 기능이 단순한 숙식제공과 합법화된 도박장소 제공이라는 종전의 개념을 탈피해 문자그대로 영혼이 위안을 얻으며 쉬도록 한다는 자신의 호텔철학을 구체화하려는 야심은 흥미롭다.

도박과 유흥이라는 이미지 속에서도, 직장 구하기가 쉽고 주민들에게는 쾌적한 삶이 보장되는 문화도시를 향한 라스베가스의 과감한 변신과 행보는 산적한 여러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우리나라 대도시가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기도 하다. 이규식 / 한남대교수,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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