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에 바란다

류병학 (미술평론가)

중부매일 송창희 문화부장 왈, "중부매일 신년특집으로 선생님께 '2009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에 바란다'는 원고청탁을 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선생님께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지난 행사 비판보다는 '신선한 대안' 쪽으로 써 주시면 좋겠습니다."2009년은 대한민국 '공예의 해'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2009년 4월 경기도세계도자비엔날레를 시작으로 9월 18일 개막하는 광주디자인비엔날레, 9월 23일 개막하는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9월 말경으로 예정되어 있는 2009 디자인코리아, 12월 공예트랜드페어 등이 개최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 주목하여 중부매일은 '2009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이하 청공비)'를 타 공예행사들과 차별화되고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해 필자에게 '신선한 대안'을 요청한 것 같다. # 공예는 생활의 미래다1956년 영국 화이트 채플(White Chaple)에서 '이것이 내일이다(This is Tomorrow)'라는 전시가 열렸다. 당시 리처드 해밀턴(Richard Hamilton)은 그 전시에 '오늘의 가정을 그토록 색다르고 멋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Just What Is It That Makes Today's Homes So Different, So Appealing?)'(1956년)라는 작품을 출품했다. 그 해밀턴의 그림은 영국 팝아트의 최초 작품으로 간주된다. 흥미롭게도 '이것이 내일이다'라는 전시 타이틀이나 해밀턴의 그림은 '미래의 가정'을 지향한다. 그러나 해밀턴의 '미래의 가정'은 사진으로 꼴라주 된 가정, 즉 '그림의 떡'일 뿐이다. (해밀턴의 그림 제목을 빌려 말하자면) 오늘의 가정을 그토록 색다르고 멋있게 만드는 것은 바로 공예다. 왜냐하면 공예야 말로 미래의 가정을 구체적으로 현실화시킬 수 있는 작품·상품이기 때문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공예가 여타의 예술장르와 다른 점은 바로 '쓰임' 때문이다. '쓰임'이 없는 공예는 '아트(fine art)'다. 외람된 말이지만 그동안 청공비는 바로 '쓰임'보다는 '예술병'에 걸린 아트를 지향했다. 앤디 워홀(Andy Warhol)은 "백화점이 미래의 미술관이 될 것(department stores are kind of like museums)"이라고 예언했다. 오늘날 백화점은 이미 미술관이 되었다. 왜냐하면 명품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명품은 히스토리가 있다. 따라서 명품은 브랜드(名)가 있는 상품·작품, 즉 기능과 미가 함축된 공예다. 그렇다면 청공비의 크라프트 페어는 명품의 각축장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트페어는 일종의 미술 견본시장, 즉 '미술백화점'이다. 미술백화점의 알맹이는 '판매'다. 따라서 크라프트 페어는 상업에 방점을 찍어야만 할 것이다. 그렇다면 크라프트 페어는 명품을 제작하는 세계적인 공방이나 기업의 참여를 유도하는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쳐야 하지 않을까? 2006부산비엔날레 리빙 퍼니처 SK건설의 스폰서로 건축된 파빌롱 안에 일반 거주공간을 연출하여 작품들을 전시. 명품 아르마니 침대와 카오루 스카모토의 '흔들 코트걸이', 백색 벽면에 시트지로 그림자를 만든 창문(한수정의 '그림자로 보기'), 조선시대 춘화도를 패러디한 최유경의 벽지작품인 '새로운 춘화도', 파손된 고가구를 보수한 김미진의 '반가구', 스폰지로 백의 형태를 만든 안진우의 '짐을 싸다', 금속공예가 유재중이 제작한 옷걸이 작품에 패션디자이너 이상봉의 의상들과 장광효의 의상들이 설치되어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가정집의 침실 풍경이지만, 침실에 연출된 모든 살림살이가 작가들의 작품들이다.
# 관객과 만남을 찾아서

2009 청공비 이인범 전시감독 왈, "인공물인 공예를 통해 이 시대 지구촌에 더불어 살고 있는 다양한 구성원들의 시대정신을 엿보고 문화담론을 생산하는 창조적 주체들을 만난다는 취지에서 '만남을 찾아서'라는 주제를 정하게 됐다."

문화담론을 생산하는 창조적 주체들을 만난다? 그렇다면 2009 청공비는 생산자들(공예가들)의 만남이 아닌가? 그러나 '공예'가 무엇보다 '쓰임'에 있다는 점에서 소비자 없는 생산자는 의미가 없는 셈이다. 따라서 청공비는 생산자들의 만남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생산자와 소비자가 손쉽게 만날 수 있는 '관객과 만남을 찾아서'가 되기를 제안한다.

기존 청공비는 작갇작품 중심주의 전시였다. 하지만 오늘날 모든 분야는 고객중심주의로 이동한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임'을 지향해야하는 공예계는 소비자(관객)보다 생산자(작가) 중심 형태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이번 청공비는 관객중심주의 전시를 고려하길 바란다. 관객중심주의 전시 연출의 사례를 들자면 우리 생활공간이 될 수 있다. 말하자면 관객이 이웃집을 혹은 카페를 방문하듯 가정집이나 사무실 등의 공간 연출 말이다.

제6회 청공비는 전시장 '안'에만 국한치 않고 전시장 '밖'으로도 확장된다. 그렇다면 전시장 밖의 공예는 기존 '환경조형물·공공미술'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기존 '환경조형물·공공미술'은 '아트'라는 이름 하에 좁은 대한민국 땅을 점유했다. 더군다나 기존 '환경조형물·공공미술'은 '작품에 손대지 마시오!'라는 '감상'으로 그쳤다. 따라서 전시장 밖의 공예는 '쓰임', 즉 미적 요소와 더불어 '작품에 손을 대세요'라는 기능적 요소도 고려되어야만 한다.

이미경 '거리 이정표'

2006부산비엔날레 퍼블릭 퍼니처 출품작품. 해운대 지역의 주요 명소 12곳을 안내하는 거리 사인물. 해운대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해수욕장 입구에 설치. 외지인들이 해운대 주변 명소의 위치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사인물. 그 사인물은 2009년 해맞이를 보러 부산 해운대를 찾는 외지인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면서 동시에 미적 경험도 제공할 것이다.

# 청주 ICC, 국제공예의 허브

만약 당신이 국제공예의 정보를 얻고자 한다면 청주의 ICC를 방문하라! 필자는 청주시에 국제공예의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는 ICC(the International Center of Craft) 조성을 제안하고 싶다. 청공비가 국제공예의 중심이 되기 위해서 무엇보다 국제공예의 데이터베이스(DB) 구축이 필요하다. 그리고 250여명의 충북지역의 공예작가들과 청주대를 비롯한 5개 대학의 공예관련 학과에서 매년 배출되는 200여명의 졸업생 그리고 50여개의 평생교육기관에서 공예교육을 받고 있는 1천500명의 시민을 위한 충북 공예스튜디오도 필요하다.

최근 청주시는 한국공예관 내에 공예인들을 위한 비즈니스룸, 공예정보자료실, 사진스튜디오, 다목적실 운영 등 작가들이 창작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공예관은 그 모든 환경을 조성하기에 '2%' 부족하다. 그리고 청공비의 본전시장인 예술의 전당은 국제전을 개최하기에 '2%' 부적절한 공간이다. 따라서 청주시가 공예산업을 정책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서 국제공예의 센터 역할을 할 수 있는 ICC 조성이 절실하다. ICC는 옛 연초제조창 부지나 옛 국정원 부지를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워홀은 '백화점이 미래의 미술관'이 될 것으로 예언했는데, 필자는 '여러분의 집이 미래의 미술관'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싶다. 왜냐하면 공예야 말로 미래의 미술관(여러분의 집)을 구체적으로 현실화시킬 수 있는 작품·상품이기 때문이다.


■ 류병학은

▶미술평론가 겸 전시기획자
▶2006부산미엔날레 바다미술제 전시감독
▶격주간 '아트레이드' 편집주간 역임
▶저서로 '이우환의 입장들들' '일그러진 우리들의 영웅' '리빙퍼니처' '그림보다 액자가 더 좋다' '이것이 한국화다'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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