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동식 / 충남교육청 중등교육과장
민주주의정치의 핵심은 글자 그대로 국민이 주인이 되고 국민 다수에 의한 의사결정을 존중하는 데 있다. 얼마간의 허점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이념과 제도는 인류가 발전시켜 온 최선의 합의기제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민주주의의 구체적인 방법은 선거이고 투표이다.

특히 정치지도자를 뽑는 선거는 현실적으로 조직과 돈과 이념의 대결로 요약할 수 있고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이념 또는 정책의 대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념이나 정책을 무시해도 좋은 선거는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민주정치를 정당정치라 하지 않는가"

이념이나 정책의 차원이 아니라면 적어도 구성원의 복지나 효율성이라도 챙겨서 표를 얻을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요소들이 결여된 선거나 투표는 돈과 조직의 힘에 의해 다툴 수밖에 없는 일이고 그 결과는 유권자들의 무관심으로 저조한 투표율을 낳거나 때로는 타락과 부정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을 것이다.

다수결의 원리가 반드시 옳거나 최선일 수 없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오늘과 같은 전문화의 시대에는 비전문가 다수의 의견보다 소수의 전문가들이 훨씬 정확하고 바람직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고 말할 수 있다. 다수결의 원리는 결코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정당성을 보장하는 만능의 원칙일 수 없음도 지적되어야만 한다.

특히 정치로부터의 중립성이 요구되거나 권력이나 재력보다는 명예와 봉사 그리고 사회적 책임감이 크게 요구되는 분야에서의 지도자를 뽑는 일은 소위 민주주의의 일반원칙으로부터도 얼마간 자유로울 수 있어야 옳다.

모든 분야의 모든 사람들이 자유로워야 하고 모두가 하나같이 평등해야 된다는 선언적인 문구를 실천적 현실로 받아들이려는 미숙함이 아직도 우리 사회를 크게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대학에서의 총장선거이고 초·중등교육의 수장을 민선으로 뽑으려는 시도일 것이다. 총장선거가 학내 분규를 일으키고 교육감 선거가 낮은 투표율로 정통성 시비에 휩싸이는 것은 그럴 수밖에 없는 소이가 있다. 교육은 정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 교육지도자에게 기대할 수 있는 목표는 지극히 명료해서 논쟁할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정당에 가입해서도 아니 되고 가입할 수도 없는 입후보자는 유권자에게 호소할 수 있는 이념상의 쟁점이 없다. 정치는 타협의 산물이지만 교육은 원칙에 충실하는 것이 본연의 임무이다. 지식과 경륜과 의지를 포함하는 교육자의 총체적 역량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역량은 그 성격상 모든 유권자들이 자세히 조사해서 적임자를 선택하게 할 수도 없는 일이거니와 입후보자의 입장에서도 자신의 장점을 내세워 지지를 얻어내기가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교육은 정당이나 특별한 정치이념에 기초하지도 않거니와 타협의 명수로서의 지도자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대학총장이든 교육감이든 그들은 학문과 교육의 전문 분야에서 학력과 경력과 지도력을 쌓은 사람이며 그 세계에서 믿음과 존경을 획득할 수 있으면 족한 것이다.

그러한 인물은 결코 비전문가 다수의 의견이나 이해관계에 얽혀 있는 사람들의 찬반으로 얻어질 수가 없다.

이제 우리 교육도 선거만능주의에서 벗어나자. 선출되어도 자유롭지 못한 지도자를 뽑기보다는 선진국에서처럼 임명제든 위원회의 제청에 의하든 보다 성숙한 방법으로 유능하고 책임있는 교육지도자를 발굴할 수 있는 제도를 찾아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기축년 새해에는 우리 교육이 보다 책임감 있고 신뢰받을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바련되기를 기원한다.

최동식 / 충남교육청 중등교육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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