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송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오셨다. 방금 어미와 이별했는지 눈물이 그렁그렁한다. 잿빛 콧등에서는 젖내가 물씬 풍겼다. 주인 없이 텅 비었던 외양간에 활기가 돌았다. 아버지는 그것만으로도 부자가 된 듯 미소를 가득 담은 얼굴로 송아지를 쳐다보았다.

세상을 다 가져도 성이 차지 않을 만큼 호기롭던 아버지가 송아지 한 마리로 흐뭇해하시는 모습에 어머니는 돌아서서 머리에 썼던 수건으로 코를 훔치셨다. 어린 나도 가슴이 아팠다.

아버지의 지극한 정성으로 송아지는 아주 잘 자랐다. 윤기가 짜르르 흐르는 엉덩이에는 똥 딱지 붙을 새도 없었다. 아버지는 그렇게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셨다. 식구가 굶어 윤기가 없으면 같이 사는 사람들이 게으른 탓이라는 말을 입에 담고 살았다. 그렇게 송아지는 아예 우리 식구였다.

예전에 소는 우리 가족에게 작은 소망이었다. 지금도 소는 얼마든지 크게 이룰 수 있는 우리 민족의 소망이다. 불안과 불확실의 시대에도 소처럼 달관하면 모든 것을 버텨낼 수 있을 것만 같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다. 소에게 여유를 배우고 달관하면서 조급해 하지 않으면서 살아왔다. 그래서 소는 우리 가족이다. 함께 사는 생구(生口)이다. 봄을 맞아 새 풀이 돋기가 무섭게 쇠죽을 쑤었다. 파릇한 송아지 죽에 고운 쌀겨를 솔솔 얹어서 이유기 아기에게 미음을 먹이듯 만족한 표정으로 바라보셨다. 어머니는 '자식들을 그렇게 위해 보시지'하고 빈정거렸지만, 잘 자라주는 송아지를 대견하게 생각하는 마음은 다를 바 없는 눈치였다. 막내에 대한 자별하시던 사랑이 송아지에게 옮겨갔지만 나는 섭섭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꼴을 베었다. 산에 올라가 흔히 '소쌀나무'라고 하는 자귀나무 새순을 꺾어서 잘게 작두질하여 쌀겨를 섞은 구정물에 버무려서 먹였다. 송아지가 사각사각 여물을 씹을 때마다 살찌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송아지는 그렇게 잘 자라서 처음 들어올 때 제 모습을 꼭 닮은 송아지를 한 마리 낳았다. 두어 달쯤 지나 송아지가 젖을 뗄 때쯤에 어미소는 제 집으로 갔다. 정이 많이 들었는데 아깝고 분했다. 아버지께서 그 대신 송아지는 아주 우리 것이 되었다고 해서 조금 위로는 되었다. 결국 우리는 어우리송아지를 어미소로 키워주고 송아지 한 마리를 얻은 것이다.힘들었던 60년대, 군사쿠데타는 우리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다. 여러 가지 복잡한 사정으로 한없이 넓은 고래실이 다 남의 손에 넘어가 버렸다. 우리 가족은 좌절의 늪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다. 그래도 아버지의 얼굴에는 그늘 한 점이 없었다. 지은 죄도 없이 큰살림을 허망하게 구덩이에 묻어버린 어른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아버지의 그런 초연함은 가족들의 원망을 사기도 했지만, 오히려 우리 형제가 지녀야 할 자존심의 버팀목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송아지는 또 어미소가 되고 새끼를 낳았다. 물론 어미도 송아지도 거리낌 없이 우리 마당에서 놀았다. 어미는 농사를 돕고, 송아지는 그런 어미 뒤를 졸랑졸랑 따라다녔다. 당시에는 송아지 딸린 소만 있어도 부자였다. 우리는 다시 부자가 될 수 있는 소망의 줄을 잡은 것이다.소망이란 어떤 것일까? 아버지는 어우리송아지 한 마리에 소망을 걸고 날마다 최선을 다 하시는 것으로 자식들을 가르쳤다. 가족처럼 생각했던 큰 소까지 우시장에 내다 팔면서 느꼈던 치욕을 어우리송아지에게 갖은 정성을 다 바치면서 극복하셨던 것이다. 예전에 소는 우리 가족에게 작은 소망이었다. 지금도 소는 얼마든지 크게 이룰 수 있는 우리 민족의 소망이다. 불안과 불확실의 시대에도 소처럼 달관하면 모든 것을 버텨낼 수 있을 것만 같다. 어려웠던 1960년대, 해묵은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남의 나라에 굴욕적 외교를 하면서 발버둥질을 치면서 결국 이루어낸 것도 어우리송아지에게서 배운 민족의 지혜였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다. 소에게 여유를 배우고 달관하면서 조급해 하지 않으면서 살아왔다. 그래서 소는 우리 가족이다. 함께 사는 생구(生口)이다. 그런데 돌아보면 나는 소만도 못하게 살아온 것 같다. 꿈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그 꿈을 이루려고 전력 질주한 삶도 아니다. 소처럼 여유롭지도 못하고 달관도 없이 마음만 조급하고 초조했다. 좌절 속에서도 어우리송아지에 회생(回生)의 꿈을 거셨던 아버지가 그리워진다.이런 시점에서 한해를 맞이한다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새삼 소망을 간추린다는 것이 우습기도 하고 허망한 일인 줄 알지만, 새해에는 좀 색다른 시간을 설계를 해 본다. 우선 세상에 대한 소박한 사랑을 소망한다. 보잘것없지만 나의 오늘은 세상이 만들어 준 것이다. 새해에는 세상을 향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열심히 생각해야겠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하여 더 뜨거운 정열을 가져야겠다. 현실에 대한 긍정, 미래에 대한 신뢰가 달관의 바탕이라는 것을 믿어야겠다.해를 상징하는 열둘의 동물이 각각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소만큼 사람들과 애환을 함께하면서 살아온 짐승은 없을 것이다. 마침 새해는 소의 해이니 아버지가 어우리송아지에 거셨던 소망을 나도 따라 가져본다.
이방주

▶청주 출생
▶『한국수필』 신인상(1998)
▶충북수필문학상(2007)
▶한국수필가협회 회원
▶한국수필작가회 이사
▶충북수필문학회 회원
▶내륙문학회장
▶수필집 『축 읽는 아이』
▶현재 산남고등학교 교사
▶E-mail : nrb2000@hanam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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