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마비 황원교씨, '굼벵이의 노래' 발표

지인으로부터 전신마비 장애를 딛고 우리나라 100대 시인에 들었다는 현수(아호) 황원교 시인의 얘길 듣고 2008년의 끝자락에 그를 만났다.

자택 컴퓨터 앞에서 마우스 스틱을 입에 물고 소변주머니는 옆에 메 단채 수신메일에 답글을 쓰고 있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낯 설은 그의 모습에 인사를 어떻게 건네야할지, 어떤 말을 먼저 해야 할지 머릿속이 텅 비는 듯 했다. 내 주변에 장애인이 없어서인지 처음엔 어색하여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한참을 망설였다,

혹여 동정심을 일으켜 실망시키진 않을까하는 마음에 조심스레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그의 입에서는 "반갑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내 걱정과는 반대로 평온하고 온화한 표정으로 나를 반겼다.

그는 "작가는 글을 쓸 때만 작가"라면서 이웃집 아저씨처럼 편안하게 대해주었다.

보이지 않는 마음의 장벽을 단번에 허물어버리는 바람에 오히려 내 자신이 신세한탄을 늘어 놓는 역현상이 발생 할 정도로 그는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정상인일 뿐이었다.

그 사람 앞에서 편견으로 바라본 나 자신이 정신적 장애자처럼 느껴져 겸허해질 수밖에 없었다.

신체중 목 아래 부분은 전혀 사용할 수없는 몸, 먹고 배설하는 일밖에 할 수없는 몸, 그것도 타인의 도움이 없인 그마저도 할 수 없는 몸을 가진 시인을 보았을 때 글을 쓸 수 있는 손 하나라도 남겨주지 않은 신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우리의 첫 만남과 느낌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1989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인하여 전신마비 영구장애인이 된 그는 1996년 첫시집 '빈집지키기'로 신춘문예 당선과 2000년 계간 '문학마을'신인상을 수상하였고, 2006년 두 번째 시집 '혼자있는 시간'을 출간했다.

이같은 장애를 가지고도 오늘날 본인의 꿈을 펼치며 글을 쓰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과 인내를 감수 하였을까싶어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물론 오늘날의 현수 황원교가 있기까지는 그의 가족애는 남달랐다. 지금도 칠순노부는 그림자처럼 그의 수족이 되어 돌보고 있었다.

하루 중 반나절을 함께 음식과 물을 먹여주며 인터뷰를 한 나또한 그를 위해 작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뿌듯했다.

그는 50년을 살아오며 느끼고 겪었던 얘기들을 어둠속에서 창밖의 햇빛을 그리워하는 한 마리의 굼벵이처럼 자신을 비유해 '굼벵이의 노래'라는 산문집을 최근에 발표했다.

"눈물겨운 의지로 처절한 시련과 좌절을 극복하고서 나는 당당하게 살아있는 자의 기쁨을 노래했다."

그는 위 산문집에서 자기 스스로를 '숨 쉬는 시체'라고 일컬으며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문학사에 길이 빛날 명사가 우리고장 충북에 살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내가 만난 그는 영혼이 맑고 가슴이 따뜻한 시인이었고 이 세상을 향한 조그마한 내 욕심마저 버리게 한 정말 소중한 만남이었다.

"청심과욕(淸心寡慾). 맑은 마음으로 욕심을 줄이고 만남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수분지족(守分智足)하노라면 고해(苦海)를 무사히 항해하리라"는 중부매일신문 독자칼럼의 글귀가 생각났다.

이 세상에는 육신의 장애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이 정신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많은 장애인들과 정상인이면서 마음속 중증장애인들에게 외치고 싶다.

희망의 노래를 부르라고.

삶을 영위함에 있어 희망을 가지고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자신감과 함께 힘차게 내딛는 기축년 한해가 되기를 바란다. / 위정숙 시민기자 orchidwj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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