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이상철 前 국민은행장을 보내며

자네가 떠나던 날엔 봄비가 내리고, 꽃샘바람이 심하게 불었지.

고향 청주에 내려와 있던 나는 가슴까지 시리게 하는 찬바람에 잠시 머리가 맑아지는 것을 느꼈는데 그것이 자네가 보낸 마지막 작별인사였을 줄이야.

자네와 나는 까까머리 청주중학교 시절부터 청주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상과대를 동문수학하고 서로 얼굴만 바라봐도 마음을 알 수 있을 만큼 허물없이 지내지 않았나. 그런 친구를 잃은 애통함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서울대 상대시절 충청권 출신들이 계룡산과 속리산의 앞자를 따서 '계속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등산을 다녔던 일 기억하시는가?

자네가 국민은행장을 하고 김재기(전 주택은행장)와 내(외환은행장)가 같은 시기에 은행장을 맡아 '청주고 동문 은행장 3인방'으로 화제가 됐던 것이 엊그제 일만 같다네. 그때 친구들은 '청주 은행 마피아'가 결성됐다고 모두들 좋아했지.

내가 처음 국회의원이 됐을 땐 자넨 흔쾌히 후원회장도 맡아주었지. 자네는 청주사람의 선비정신으로 정도를 걸었던 존경받는 금융맨이었지.

신용카드 제도를 국내 최초로 보급해 신용거래 활성화를 선도했고, 국책은행 최초로 말단 행원 출신의 국민은행장이 됐지. 은행장 재임 시에는 5조원에 불과하던 수신고를 15조원으로 증가시켰고, 4년 연속 최우수 저축기관상을 받으면서 국민은행을 국내 최고의 리딩뱅크로 끌어올렸지.

내가 재무부장관을 할 때는 '은행원 출신 첫 은행연합회장'을 맡아 은행과 관련된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었던 일도 잊을 수 없는 일이라네.

얼마 전 위독하다는 소식에 청주에서 급히 서울에 있는 병원을 찾았을 때 자네는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내 손을 꼭 잡았지. 그것으로 됐네. 우리 사이에 무슨 말이 더 필요했겠나.

자네를 보내야 하는 마음 애석하지만 하늘의 뜻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소중한 인연으로 함께 했던 시간, 참으로 고마웠네.

자네가 옆에 있어서 든든했던 만큼 자네없는 빈 자리가 허전하고 많이 그리울 것이네. 병마 때문에 고통스러웠던 마지막 시간일랑 잊고, 아름다웠던 기억만 간직하고 가셨길 비네.

친구여! 편히 쉬게나.

국회의원 홍 재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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