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서거 60주기 기념 유물 19점 문화재 등록

올해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90주년과 백범 김구 선생 서거 60주기를 맞아 문화재청이 선생의 유물 19점을 문화재로 등록하기로 했다.

백범 김구(1876.8.29~1949.6.26)선생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으로 활동하며 나라의 자주독립과 통일조국 실현을 위해 헌신한 민족 지도자로, 1949년 6월 26일 서울 경교장(京橋莊)에서 손님으로 가장한 안두희의 흉탄을 맞고 서거했다.

이번에 문화재로 등록 예고되는 유물 19점은, 선생이 총격으로 서거할 당시 입고 있었던 피묻은 의복류(8종 10점), 편지나 붓글씨에 사용한 인장 (3종 5과), 윤봉길 의사의 상해의거 직전 윤의사와 맞바꿔 찬 회중시계(1점), 서거 당시 책상 위에 놓여있던 유묵(3점) 등으로 백범 김구 선생의 생애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활동과 관련해 역사적·상징적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혈의(血衣)는 선생이 흉탄에 쓰러지던 순간까지 입고 있었던 의복류로 조끼 적삼, 저고리, 조끼, 개량속고의, 바지, 대님, 양말 및 개량토시이며, 혈흔(血痕)과 탄흔(彈痕)이 남아 있다. 1996년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보존처리 하면서 의복에 묻은 피 검사를 통해 선생의 혈액형이 AB형인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 백범 김구선생 낙관
인장(印章)은 선생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으로 있을 때부터 편지, 붓글씨 등에 사용한 것들이다. 이 중에서 1940년경부터 1945년까지 사용한 '金九之印' 인장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판공실장을 역임한 민필호가 관리해 오다 후손이 독립기념관에 기증한 것이며, 낙관(落款) 세트(寬和·金九之印·白凡)는 근대기의 유명한 전각가 김태석이 1946년에 새긴 것이다. 이 인장들은 선생이 광복 후 쓴 유묵의 대부분에 사용된 것이어서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회중시계는 윤봉길(1908~1932)의사가 의거(義擧)를 위해 중국 상해로 떠나는 날 아침에 김구선생의 시계와 맞바꿔 찬 것으로, 윤 의사의 유품이면서 김구 선생의 유품이기도 하여 그 가치가 크며, 애국 애족을 위한 거사에서 분초를 정확히 따져 실행하기 위한 소중한 뜻이 담겨 있다. 회중시계는 양복의 포켓 등 품속에 넣어 휴대했던 시계다.

▲ 백범 김구선생 회중시계
유묵 '韓美親善平等互助'는 선생이 1949년 1월에 당시 주한미국대사관 문정관이던 헨더슨(Gregory Henderson, 1922~1988)에게 써 준 붓글씨로 당시의 시대상황과 통일조국을 열망한 의지가 반영되어 있으며, '愼其獨'(신기독, 홀로 있을 때에도 삼가다)과 '思無邪'(사무사, 생각함에 그릇됨이 없다)는 서거 당시 책상 위에 두루마리 상태로 놓여있던 것으로 가장자리에 혈흔이 남아 있어 역사적·상징적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문화재청은 30일간의 문화재 등록예고 공고를 통해 소유자를 비롯한 각계의 의견을 수렴한 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 등을 거쳐 백범의 서거일(6월 26일)에 맞추어 문화재로 공식 등록할 계획이다.

/ 송창희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