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바보론

작가들이 공통적으로 그려보고 싶어 하는 인물 중의 하나가 바보입니다. '벙어리 삼룡이'가 그렇고, 노틀담의 꼽추 '콰지모도'가 그렇고, '돈키호테'가 그렇습니다. 현실적으로 보면 못나고 어리석고 사람구실 못하게 생겼지만 내면에 감추어진 따뜻한 인간성과 지순한 마음을 보여주고 싶어 합니다. 톨스토이의 '바보이반'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이반은 권력을 모르고 돈을 모르는 어리석은 바보입니다. 이반의 형들은 악마의 속삭임에 금방 넘어가는 똑똑한 이들이라서 악마가 주는 권력과 재력을 얼른 받습니다. 그리고 악마의 계획대로 결국 파탄에 이르고 맙니다. 그러나 이반은 그게 무엇인지를 몰라서 바보입니다. 이반을 왕으로 추대한 그 나라 백성들도 이반처럼 바보여서 전쟁도 할 줄 모르고, 금화를 주면 한두 개 가지고 놀다 맙니다. 돈 귀한 줄을 모릅니다. 악마들은 답답해 하다가 제 풀에 지쳐 땅 속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이반의 벙어리 여동생처럼, 열심히 일하는 정직하고 투박한 손을 가진 사람만을 믿을 뿐 말이 앞서고 잔머리만 굴리는 이들은 믿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원조 바보에는 온달이 있습니다. 그는 가난하고 제대로 배우지 못하였으며 나무를 해서 어머니를 봉양하며 사는 우직한 사람이었습니다. 평강공주를 만나 그녀의 도움으로 학문과 무예를 익힌 독학생입니다. 해마다 삼짇날에 열리는 사냥 대회에 참가하여 좋은 성적을 올려 신분이 상승하였지만 번듯한 가문 출신의 주류 귀족이 아닙니다. 후주(後周)의 무제(武帝)가 고구려를 침입하자 선봉에 나서 승전하여 대형(大兄) 작위를 받으며 이름이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왕의 사위이면서 궁 안에서 권력을 어떻게 나누어 가질까를 논의하는 일로 시간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는 늘 최전선에 있었습니다. 맨 앞에 서서 몸을 던져 적과 싸웠습니다.그리고 그 최전선의 전장에서 전사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바보입니다. 그러나 평강왕과 영양왕 때의 수많은 권력자와 대신들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바보 온달의 이름은 오래오래 기억하고 있습니다.

근자에 우리나라에 바보 소리를 듣는 이가 두 사람 있습니다. 한 분은 김수환추기경이고 한 사람은 노무현 전 대통령입니다. 김수환추기경도 가톨릭의 사제로서 많은 이의 존경을 받으며 성당 안에만 있어도 될 터인데 찬바람 부는 거리에 더 많이 서 있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찾아가 그들 옆에 앉아 함께 기도했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나섰다가 핍박받는 이들의 방패가 되어 주었습니다. 독재정권과 맞서 싸우다 성당 안으로 쫓겨들어 오는 학생들의 피신처를 만들어 주었고 그들을 잡으러 들어오는 경찰에 맞서서 나를 밟고 지나가라고 하셨습니다. 정말로 가난해서 남기고 갈 것이 없었고, 고난 받는 어려운 길을 스스로 골라 걸어가다 마지막 두 눈마저 주고 갔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바보 같다고 했지만 그분의 모습을 보고 성당을 다니기 시작하는 이들이 수없이 생겨났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바보 소리를 듣기 시작한 것이 떨어질 걸 뻔히 알면서도 출마하여 낙선을 거듭하면서 부터입니다. 그의 낙선은 지역감정에 따라 투표를 하는 것이 얼마나 문제인가를 확인시켜 주곤 했습니다. 그는 정직하려고 했고 불의에 타협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불의에 타협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주고 싶어 했습니다. 수많은 바보들이 그를 지지했습니다. 영악하거나 영리한 사람보다 때로는 바보가 훨씬 더 순결한 데가 있다는 걸 바보들은 알았습니다. 지금도 잘난 주류들은 그를 손가락질 하고 욕하며 비아냥거립니다. 맞습니다. 그들은 바보입니다. 그러나 똑똑한 이들은 바보들이 왜 그렇게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지 끝내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으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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