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이야기 코너인 '에세이 뜨락'은 지역 수필가들이 1주일에 한 번씩 방문, 삶의 여정에서 건져올린 생각을 수필, 꽁트 등의 형식으로 들려주는 작은 사랑방입니다.

얼마 전부터 몸에 이상신호가 오는 것 같다. 연초에도 입었던 옷이 갑자기 끼는 것 같고 속 옷 치수도 늘었다. 염념으로 붙어버린 뱃살도 이젠 자리를 잡은 것만 같고 오랜만에 보는 지인들은 얼굴이 많이 좋아졌다며 놀라는 기색이다. 살면서 살이 좀 찌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은 했었는데, 이러다 옷을 모두 못 입게 되면 어쩌나 싶어 은근히 걱정된다.

중년이 되고 갱년기가 오면 살이 찐다더니 친구들도 복어처럼 배가 나오고 두리 뭉실해지는 허리 때문에 너 나 없이 살 타령이다. 평소에 살이 찔까 봐 자제하는데, 먹고 싶은 것 마음껏 먹으며 살아봤으면 원이 없겠다는 농담까지 한다.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이 가장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은 볼록하게 나온 뱃살이다. 복부비만은 가장 무서운 성인병을 가져오고 그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다고 한다.

살과의 전쟁, 이제 다이어트는 여자만의 괴로움이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관심거리다. 덕분에 늘어나는 것이 헬스장이나 스포츠센터다. 매스컴에서는 살 빼는 약을 과대 선전하고 잘못 복용한 약으로 목숨을 잃는 일까지 있다고 한다. 가까운 지인 한 사람도 다이어트를 하느라 안 해본 것이 없는데, 과장된 광고에 속아 돈만 없앴다고 불평을 했다.

주말이면 찜질방에 가는데 찜질방에도 터줏대감처럼 살빼기 지킴이들이 있다. 그들은 뜨거운 불가마에 들어가 옷에서 물이 흐르도록 땀을 빼고는 다시 목욕탕의 사우나 실에 들어간다. 사우나 실은 온도가 높아 숨도 못 쉴 것 같은데 분홍색 우비를 하나씩 두르고 고통스럽게 땀을 뺀다. 내가 보기에는 그다지 살이 찐 것 같지 않은데, 소금을 바르고 뱃살을 움켜잡고 비트는 그녀들을 보면서 여자의 미는 어느 정도가 되어야 만족을 느낄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 꽁치가 되기 전엔 절대로 맛있는 반찬을 만들지 않겠다던 그녀가 이젠 날렵한 꽁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찜질방에서 다이어트를 하는 여자들에게 두 달 만에 15킬로를 감량한 그녀의 존재는 영웅이었다. 누구든 열심히 노력하면 그녀처럼 꽁치가 될 수 있다는 희망에 그녀는 늘 덩치 큰 여자들한테 에워싸여 있었다. 그렇게 살을 빼는 여자들의 한결같은 말은 처녀 적엔 날씬하다 못해 빼빼 말랐다는 소릴 들었는데, 아이를 낳고 나니 살이 쪘다고 했다. 하긴 임신하고 찐 살은 출산해도 다 빠지지 않으니, 여자는 아이 한 명 낳고 나면 영락없이 아줌마의 몸매가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나이 드니 체중은 늘지 않아도 전에 입던 옷들이 자꾸 끼이는 걸 보면 정말 나잇살 이란 게 있나보다. 저울에 올라가는 것이 무서워 아무도 없을 때 살짝 올라가 본다는 어떤 여자는, 아침에 간단히 우유 한잔을 마시고 산에 갔다가 점심은 밥 반 그릇과 김치로 때운단다. 그리고 목욕탕에 와서 저녁 시간까지 사우나를 하고, 8시가 되어서야 기진한 몸으로 집으로 가는 것을 반복해서 두 달을 했더니, 약 15kg가 빠졌다고 한다. 그녀는 가족들에게 아예 "당분간 엄마가 꽁치가 될 때까지는 저녁 반찬은 안만들 거야, 이제부터 꽁치가 될 때까지 엄마의 자리는 부재중"이라고 공표를 했다. 그리고는 그 약속을 못 지키면 남편과 아이들에게 면목없고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아, 오기로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잠이 들었다. 그렇게 힘겹게 두 달을 보내고 나서 날씬한 꽁치가 된 자기 몸이 대견해, 하루에도 서너 번씩 전자저울에 올라가 달아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어떻게 15킬로그램이 빠질 수 있는지, 지금도 통통한 편인데 살이 빠지기 전 그녀의 얼굴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녀는 살이 빠지고 나니 삶에 의욕이 생기고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전에 입던 옷은 과감하게 없애고 새로 예쁜 옷을 사 입고, 잃어버렸던 청춘을 다시 되돌려 받은 것 같아 자녀와 남편에게도 더 잘해주고 싶다고 했다. 꽁치가 되기 전엔 절대로 맛있는 반찬을 만들지 않겠다던 그녀가 이젠 날렵한 꽁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찜질방에서 다이어트를 하는 여자들에게 두 달 만에 15킬로를 감량한 그녀의 존재는 영웅이었다. 누구든 열심히 노력하면 그녀처럼 꽁치가 될 수 있다는 희망에 그녀는 늘 덩치 큰 여자들한테 에워쌓였다. 헬스를 하고 찜질을 하는 여자들에게 다이어트 성공 후기를 자랑스럽게 말하는 그녀를 보며, 나이 들어도 여자의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은 끝이 없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어머니 세대엔 먹을 것이 없어서 걱정이었는데, 이젠 오히려 감당 못 하게 찌는 살을 빼려고 약을 먹으며 애를 쓰는 시대가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참 아이러니하다. 오늘도 출근준비를 하며 옷을 입었다 벗었다 하면서 혼자 웃는다. 어떤 사람은 아무리 잘 먹어도 살찌지 않아 고민이고, 또 어떤 이는 물만 먹어도 살이 쪄서 고민인 살빼기, 현대를 살아가는 여자들에게 있어 다이어트는 앞으로도 영원한 숙제일 것만 같다.
박종희

▶2000년 월간문학세계 수필 신인상으로 등단
▶제 3회 서울시 음식문화 개선을 위한 수필공모 대상수상
▶하나은행 여성 글공모전 입상
▶제29회 전국만해백일장 시 부문 장려상 수상
▶2008 mbc라디오 신춘문예 '신춘편지쇼' 입상
▶2008년 가족문집 '나와 너의 울림' 발간
▶충북여성문인협회 청주문인협회, 충북수필문학회, 한국작가회의충북지회회원
▶email :essay02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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