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회 괴산지회 설립 김용응 생가 안전대책 시급

괴산군 소수면 수리에 부자(父子)독립운동가의 후손 김형식(84)할아버지가 산다.

김옹의 조부 김용응은 일제시대 신간회 괴산지회를 설립(1927.11.16)해 지회장을 맡고, 1928년 4월 23일 구속수감 되었다. 일제시대 소련에 가서 레닌을 만나기도 했고, 독립군 군자금을 제공했다. 해방 후 서울에서 건국준비위원회 활동과 반민특위 위원장(중앙)을 제안 받았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고사했다.

김옹의 부친 김태규는 배제중학교 졸업 후 세브란스의전에 입학했지만 3.1만세운동을 맞아 학업을 중단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청년외교단에 안재홍(총무부장), 연병호(괴산군 초대 국회의원)과 함께 재무부장으로 활동하다. 대구에서 체포되어 징역 1년을 선고 받았는데, 실제 복역기간은 약 3년 이었다.

김형식옹의 집 뒤편에 '부자독립운동가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 괴산군 소수면 수리의 김용응·김태규 父子독립운동가의 생가가 다 쓰러져가고 있다.
 

김옹은 배재중학교을 나오고, 1945년 11월 현 서울대 법대의 전신인 서울법전에 입학한 그는 좌우갈등이 격화되면서 선배들의 권유에 의해 월북 후, 한국전쟁이 나면서 인민군 소좌로 남에 내려왔다.

남도부 부대에 소속되어, 17부대장(추일부대)을 맡았다가 신불산에서 52년 2월 12일 체포됐다.

사형선고에서 무기징역을 받고, 4.19직후에 20년으로 감형되어 47세에 석방된 그는 49세에 결혼을 하고, 고향의 집에 내려와 35년째 현재의 집에 살고 있다. 안채는 80년대 말 무너지고, 할아버지가 기거하는 사랑채만 남아 있다. 그러나 사랑채도 무너지기 직전 위태위태하다.

사랑채 천장 상량문에 1927년 3월에 지어진 건물이라는 기록이 있다. 할아버지가 1926년생이니, 이 집도 할아버지 나이만큼이나 연로하다.

독립운동가의 생가다운 면모를 갖추기를 바라지만, 우선 할아버지가 사는 데에 불안하지 않을 만큼만이라도 보수를 하고 안전대책을 세웠으면 좋겠다.

/ 김순애 시민기자 dnfck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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