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약전골목 지킴이 강석균, 아파트 일색 반대

청주시 남주동 가구점골목은 예전 약전골목으로 아직도 이 골목에는 대동한약방이 있다. 1928년 부친 강수근 원장이 개업한 이후, 아들 강석균(79)원장이 지금까지 81년째 운영 중이다.

강 원장은 1950년 5월 20일 당시 6년제 청주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에 6월 초에 입학해서 2주정도 다니던 중 한국전쟁의 발발로 청주가 함락된 후 7월 중순 걸어서 집에 도착했다.

돌아와 보니, 약전거리는 모두 불에 타고 없었으며, 가족들이 분평동에서 피난할 때 불길이 밤에도 높이 올라가는 것을 보고 "누구네 집이 저렇게 타는가?"했는데, 돌아와 보니 여기 우리동네더라는 얘기를 들었다.
 

   
 
 
 

당시 약전골목은 워낙 유명하고 큰 약방들이 집중 되어 있어 대동한약방은 대동(大東)약포라고 불렸고, 서씨가 하던 금북(錦北)약원, 최봉주씨가 경영하던 동화약방, 유만형씨가 경영하던 만춘당, 朴善來약방, 조필선씨가 하던 대창약방 등. 큰 거리 양쪽뿐만 아니라 사이의 골목에도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약령시'가 열릴 만큼 전국에서 손꼽혔던 청주 약전골목은 전쟁 때 모두 탔다. 그 당시에 선친 강수근은 젊은 측에 들었지만, 대부분이 상당한 고령이라 재건의욕을 상실한 상태였다. 마땅히 이어서 하려는 후손도 없었고, 한약방은 엄격하게 자격요건이 필요한 일이라 자손이 하려고 해도 무허가로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불에 탄 후 다시 한약방을 재개한 집은 강원장댁 하나뿐이다. 강 원장은 선친이 1958년 54세로 타계하자, 법학공부를 접고, 부친의 가업을 이었다.

강원장은 60년대 중반 약전골목 재건을 위해 도청과 수차례 교섭을 했지만, 그 대답은 '일정한 거리 안에 같은 업종이 들어올 수 없다'는 것 이었다.

이제 이 거리는 가구점골목으로 명소가 되었다. 그런데 요즘 재개발이야기가 술렁댄다.

"재개발한다고, 다 뜯어 부수고 아파트 짓는다고 해서 내가 반대했어. 이 골목의 면모를 살려서 발전을 시키기 위한 계획이라야지. 죄다 뜯고 아파트 지어서 뭐 할 거냐 말이여" 강원장의 목청이 높아졌다.

그는 약전골목이 불타서 사라진지 59년이 지난 지금, 재개발이라는 명목으로 가구점골목이 뜯기어 사라지게 될까봐 우려한다. 강원장은 여기서 나고, 대학시절 나가있었던 몇 년 만 빼고는 이 집에서만 살아온 진짜 토박이이다. 약전골목의 산 증인이인 그가 두 번째 명소상실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 / 김순애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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