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 시인들의 시가 너무 어려웠나요? 그러면 이번에는 다시 학생의 시를 한 편 보겠습니다.

# 똑똑똑 가나혜 (충북여고 1)
똑똑똑

파아랗던 곡식들이

황토색이 되고 싶어

문을 두드립니다.


똑똑똑

푸릇푸릇 초록색이던 나뭇잎들이

알록달록 예뻐지고 싶어

문을 두드립니다.


똑똑똑

파아랗던 내 마음도

알록달록 해지고 싶어

당신의 마음을 두드립니다.

방법이 한 눈에 들어오죠?

우선 곡식과 나뭇잎이 변하는 모습을 앞에서 제시했습니다. 똑같은 문장구조와 똑같은 말투로 반복했습니다.

이렇게 한 번 반복이 이루어지면 읽는 사람은 그 다음 번에도 당연히 그렇게 반복되리라는 기대를 갖고 읽습니다. 마치 마술에 걸린 것처럼 말이죠. 이런 반복을 시라는 갈래보다 더 잘 활용하는 갈래는 없습니다. 이렇게 기대를 하게 해놓고서는 마지막 연에서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입니다. 사랑을 표현한 것이죠.


# 손가락 김은영 (회인중2)
손가락은 5개 있다.

엄지손가락, 검지손가락, 가운데 손가락, 약지손가락, 새끼손가락.



엄지손가락은 손가락 중에서 제일 크다.

검지손가락은 제일 많이 쓴다.

가운데 손가락은 욕을 할 때 많이 쓴다.

약지손가락은 반지를 끼고 있다.

새끼손가락은 약속이다.



이렇게 쓰임새와 생김새가 다르지만

손가락은 한 가족이다.




방법이 눈에 쏙 들어오죠? 기성 시인의 작품도 어렵지 않습니다. 한 눈에 들어올 것입니다.





# 피항 - 오세영
명절날

거실에 모여 즐겁게 다과(茶菓)를 드는

온 가족의 단란한 웃음소리,

가즈런히 놓인 현관의 빈 신발들이

코를 마주 대한 채

쫑긋

귀를 열고 있다.



내항(內港)의 부두에

일렬로 정연히 밧줄에 묶여

일제히 뭍을 돌아다보고 서 있는 빈 선박들의

용골.

잠시 먼 바다의 파랑을 피하는 그

잔잔한 흔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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