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사회부 부국장

존 F 케네디 전 미국대통령의 막내동생인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이 지난해 국민적인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정치인으로서 중요한 약속을 지켰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5월 자택에서 쓰러진 후 악성 뇌종양 판정을 받았고, 병원에서 장시간의 수술을 받았지만 의료보험 관련 법안 표결에 참여하기 위해 상원 본회의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76세의 고령인 그가 온전치 못한 몸을 이끌고 상원에 등장한 것은 수술받기전 의료보험 표결에 참석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했기 때문이다.

지키기 힘든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는 정치인의 모습은 잔잔한 감동을 안겨준다. 하지만 정치인들만큼 약속을 지키지 않는 집단도 흔치않다. 지역주민 뿐만 아니라 전국민을 상대로 틀림없이 약속하고도 그 약속을 헌신짝 처럼 버리는 사례가 허다하다. 오죽하면 미국의 모 언론사가 세상에서 가장 거짓말 잘 할것 같은 직업 '베스트 5'의 가장 꼭대기에 정치인을 올려놓았겠는가.

하지만 미국의 정치인들은 약속을 잘지키는 편이다. 적어도 우리나라 정치인과 비교할바가 아니다. 약속을 우습게 아는 정치인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정도다. 정치적인 소신이 바뀌는 것은 다반사고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슬그머니 다시 출마한 정치인이 얼마나 많은가.

국회의원직에 사퇴한다고 기자회견까지 하고도 금뺏지를 달고 다녔던 선량들도 드물지않게 볼 수 있다. 심지어 군정종식과 민주화에 기여한 모 전직 대통령은 두번이나 대선에 실패한뒤 눈물까지 흘리며 정계은퇴를 했다가 다시 대선에 출마해 기어이 청와대에 입성하기도 했다. 그나마 정치인들의 개인적인 약속은 국민들에게 실망은 주겠지만 국가적인 피해는 주지 않는다. 문제는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되고 있는 국책사업에 대한 약속이다. 귀중한 혈세가 낭비되는 것은 물론이고 정부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지는 것은 불보듯 뻔하다.

대표적인 경우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세종시다. 이명박대통령은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시절 "신행정수도를 빠르고 튼튼하게 세계적 명품도시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세우며 충청권을 공략했다.

하지만 최근들어 이 대통령은 세종시를 원안대로 추진할 수 없다는 속내를 은근히 내비치고 있다. 정운찬 총리는 행정기능의 이전이 아닌 국·공립 교육·연구기관을 이전해 자족기능을 보완하는 이른바 '세종시 보완론'을 거론하면서 논란에 불을 지핀데 이어 한나라당은 세종시를 '녹색첨단복합도시'로 건설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키로 했다.

결국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겠다는 것이다. 세종시가 변질되면 혁신도시와 기업도시의 앞날도 뻔하다. 당초 9부 2처, 2청이 이전하기로 했던 정부기관이 옮기지 않는다면 어느 공공기관이 혁신도시로 이전하려고 하겠는가.

물론 세종시에 대한 '딜레마'를 알만한 사람은 안다. 대통령과 국회는 서울에 두고 국무총리와 정부 부처를 세종시로 이전시키는 공간적 분산 구도는 국정의 비효율과 시간적 낭비를 초래한다는 행정도시 반대론자들의 논리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세종시'는 수많은 토론끝에 이미 여야 합의로 통과했으며 법률이 정해졌고 이제까지 추진돼 오던 초대형 국책사업이다. 이런사업을 정권이 바뀌었다고 정부·여당에서 세종시의 성격을 바꾸려는 의도를 보이는 것은 수도권에 선택과 집중하려는 정치적인 발상이다.

미국의 사상가 랠프 에머슨은 "누구나 약속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 약속을 이행하기란 쉬운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또한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처럼 실천하기 쉽지않은 약속을 철석같이 이행하는 정치인이 우리에겐 과연 요원한 것인가. 법치와 신뢰가 무너진 나라에서 녹색첨단복합도시도 안바뀐다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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