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덕 교위 '살인의 추억' 속편은 없다

직원부문 최우수상= 박종덕 교위

"관련 업무인 재소자취업·창업과 관련해 수형자들과 대화 나누면서 느낀 것을 썼는데 좋은 상까지 주셔서 영광입니다."

직원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직업훈련과 박종덕(45) 교위는 ''살인의 추억' 속편은 없다'는 제목으로 한 무기수의 취업일지를 솔직하게 써내려갔다.

그는 청주교도소 수형자취업 및 창업지원협의회 실무를 담당하면서 출소자들과 가장 가까이에서 취업과 창업을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다. 청주교도소에서만 16년을 근무했기 때문에 청주교도소 재소자들에 대한 애정이 더 각별하다.

"출소해도 갈 데 없는 수형자들 참 많아요. 그래서 출소해도 다시 교도소로 들어오는데 참 안타까워요. 지역 향토업체에서 출소자들을 보다 따뜻하게 안아줬으면 좋겠어요."

출소자들의 취업과 창업은 재범률을 낮출 수 있다는 측면에서 교정의 중요한 축을 하고 있다. 그러나 재소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이 여전히 색안경을 낀 채여서 박 교위는 늘 고민이다.

"라텍스 코리아 등 주위 기업체에서 관심을 가져준 덕분에 일부 출소자들이 어렵게나마 재기에 성공하고 있어요. 더 많은 출소자들이 당당하게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주위에서 더 도와주세요."

박종덕 교위는 제2, 제3의 수연이의 안정된 사회복귀를 위해 오늘도 소중한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 김미정mjkim@jbnews.com



수상작품= '살인의 추억' 속편은 없다


아침 식사를 하고 배달되어 온 신문을 펼쳐보니 오늘도 '나영이 사건'이 지면 한쪽을 여전히 차지하고 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우리 모두가 희생양이 된 어린이의 부모 심정으로 가슴 아파했고 정치인들은 각종 대책을 쏟아내고 있으며 법조인들 또한 자성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런 사건에는 나 또한 수용자를 교정 교화하는 교도관이라는 본분을 망각하고 흥분하기에는 다른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번만은 정말 제대로 된 대책이 수립되어 두 번 다시는 제 2의 '나영이 사건'이 발생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해본다.

서두를 너무 무거운 이야기로 시작한 이유는 이번 사건보다 국민들의 뇌리에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각인되어 있는 화성연쇄살인사건의 한 자락을 이야기 하고 싶어서다. 1980년대 경기도 화성군 일대에서 여성 9명이 무참히 살해된 영구 미해결 사건으로 지금도 생생히 남아있다.

이때 유일하게 체포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9년 동안 수감생활을 하였던 윤수연(가명)과는 청주교도소에 오랫동안 수감되어 있어 오며가며 얼굴을 익혀 친숙한 모습이었지만 아는 것이라곤 장애인에 화성연쇄살인사건으로 구속되었다는 단편적인 것이 전부였다.

더위가 막 힘자랑을 시작하려고 하던 7월 초순쯤 수연이가 상담을 신청해 왔다. 그와 마주 앉자마자 대뜸 "주임님 도와주셔야 되겠습니다. 돌아오는 광복절 가석방 신청자로 선정이 되었는데 출소를 해도 더 걱정입니다."

남들은 가석방으로 나가지 못해 걱정을 짊어지고 사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란 말인가?

"한번 무슨 속사정이 있나 얘기를 해봐" "주임님도 잘 아시겠지만 소아마비를 앓아 오른쪽 다리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장애로 인해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고 아직도 한글을 깨우치지 못했습니다. 19년 수용 생활동안 배운 것은 봉재기술이 전부입니다. 가족으로는 누님 한분과 여동생이 있지만 오히려 제가 도움을 주어야 할 정도로 어렵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석방으로 출소하게 되면 거처할 곳과 취업 좀 시켜주십시오! 주임님만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만 다 쏟아놓고 남 이야기는 듣지도 않고 일어서는 수연이를 주저앉히려 일어나려 했지만 내 양어깨에는 어느새 한라산과 백두산이 올라와 있는 것처럼 도저히 움직이지를 않았다.

상담을 마치고 어떻게 도와줄 방법이 없을까? 혼자 아무리 궁리를 해보아도 갑자기 심봉사가 된 것처럼 한치 앞도 보이지가 않았다. 숙식은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이나 출소자의 집을 운영하는 뷰티플라이프 나호견 원장께 부탁을 하면 해결이 되겠지만 최악의 조건들로 똘똘 뭉쳐있는 수연이를 취업시킨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나만 믿고 기다리고 있겠다는 말을 듣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우선은 뷰티플라이프 원장님께 수연이 이야기를 하고 출소를 하게 되면 숙식을 제공 받을 수 있도록 요청을 드렸더니 나와 같은 생각을 피력하였다.

"숙식이야 방 한 칸 주면 되겠지만 취업이 되겠어요. 우리 집에서는 다른 건 다 용서가 되지만 할 일 없이 집에서 빈둥빈둥 있는 것은 용서가 안 됩니다. 주임님이 취업은 도와주실 수 있겠어요?" "제가 최선을 다해서 취업은 책임지겠습니다."급한 마음에 취업은 책임진다고 말은 했지만 어떻게 책임을 진단 말인가? 마음속은 나침반 없이 망망대해를 이리저리 헤매고 있었다.

그 다음날 취업 지원을 위해 충북지체장애인협회 유성종 취업부장에게 수연이 취업상담을 부탁하였다. 고맙게도 바쁜 와중에도 선뜻 교도소를 방문하여 취업상담을 해 주었다. 그런데 취업을 맡고 있는 부장님도 고개를 내젓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광복절 가석방이 확정이 되어 미리 준비해 두었던 뷰티플라이프에서 생활을 시작하였지만 역시 취업이 문제였다.

출소 후 보름가량이 지난 어느 날 원장님으로부터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주임님 기뻐하세요. 수연이가 오늘 취업을 했습니다. 정보지를 보고 같이 찾아가 취업을 했는데 교도소에서 배웠던 봉재공장입니다. 이젠 한시름 놓았습니다." 원장님의 기쁨과 밝은 목소리처럼 내 목소리는 더 흥분되어 다른 직원들이 일하고 있는 것도 잊은 채 우렁차게 사무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정말입니까? 원장님 정말 고맙습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 지 정말 감사합니다." 마치 내 자신이 취업을 한 것처럼 마냥 기쁘기만 하였다.

10여일이 지난 점심 식사 시간에 휴대폰 벨이 요란하게 진동을 한다. 누군가 보았더니 수연이의 전화였다. 반가움에 다른 것은 묻지도 않고 "직장은 잘 다니고? 잘 되었구나. 정말! 열심히 살아야해. 알았지?" 그런데 수화기 너머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밀려왔다.

아니나 다를까 "주임님 어제 직장 그만 두었어요. 저 때문에 작업 흐름이 깨진다고 사장님이 부르시더니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고 해서 오늘 출근 못했습니다. 놀 수는 없고 주임님이 꼭 취업자리 좀 알아봐 주세요?" 아픈 마음을 달래주는 것이 가장 급선무인 것 같았다. "19년 동안 교도소에서도 살았는데 취업에 얼마가 걸릴지 모르겠지만 마음 조급하게 갖지 말고 운동도 하고 세상 구경도 취업 전에 많이 하고 있어. 취업하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어."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내속은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취업처를 알아보기 위해 수소문하던 중 동료 직원으로부터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라텍스코리아 진동국 기획실장을 소개받게 되었다. 매트리스, 침대를 생산하는 업체로 IMF 때 부도를 맞아 현재까지도 신용불량이 되어 기업 대표도 맡지 못하고 기획실장이라는 직함으로 활동하며 제2의 전성기를 다시 시작하려고 동분서주하고 있는 기업인이다.

실장님께 방문 목적을 솔직하게 말하고 수연이의 취업을 간곡하게 요청하였다. 물론 돌아올 대답을 예감하면서 그런데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대답이 돌아왔다. "주임님 저도 갖은 고생을 다하고 지금까지도 살고 있습니다. 그 사람의 심정을 다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어느 정도는 이해할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사회에서 누군가 받아주지 않는다면 내 가족이 아니면 또 누군가 아픔을 겪게 되겠지요. 걱정 마세요. 우리 회사에서는 일자리가 없지만 봉재기술을 익혔다니 취업을 책임지겠습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어딘가 전화를 건다. 수연이 신상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취업을 부탁한다는 말이 이어지고 드디어 전화가 끊어졌다. 돌아올 답을 기다리는 찰라의 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는지 손바닥에는 나도 모르게 땀방울이 맺혔다. "잘 됐습니다. 내일 업체 사장님이 여기로 오기로 했으니 수연이하고 같이 오세요."그 말 한마디에 양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무게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한 걸음에 백록담과 천지에 올라 있었다.

다음날, 수연이에게 취업이 확정되었다는 소리는 혹시나 하는 불안감에 말도 한마디 못하고 면접을 보러 같이 가 볼 때가 있다는 말로 대신하고 급한 마음에 약속 시간보다 일찍 사무실에 도착하였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진동국 실장과 조금 뒤에 알게 되었지만 청주 시내에서 봉재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S회사 사장님이었다. 간단한 통성명이 오가고 수연이에 대해 설명을 하려하니 벌써 실장님을 통해 모든 것을 아는 눈치였다. 그래서 나는 "수연이는 남들 보다 배우지 못했고 일도 서툴고 장애인에 전과자에 모든 악조건을 가지고 있지만 성실성 하나만은 제가 보장하겠습니다."

이어질 사장님의 입만 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이야기는 대강 들었습니다. 기업주 입장이야 일 잘하고 전과 없고 성품 좋은 사람 고용하고 싶은 것은 누구나 똑 같아요. 하지만 주임님이 성실성 하나만은 보장한다니 내가 한번 믿고 써 보겠습니다. 내일부터 우리 회사에 출근하세요." 이때의 기분은 어떤 감탄사나 미사여구를 쓴다고 하여도 다 표현하지 못했을 것이다. 단지 내 입에서는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세상에 이보다 더 고마운 사람들이 어디 있단 말인가? 주저하지 않고 절망과 차별이라는 벽과 외롭게 싸우고 있는 수연이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어 주신 이런 분들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살인의 추억' 속편은 더 이상 영화로 만들어 질 수 없을 것이다.

며칠 후 수연이로부터 반가운 전화를 받았다. "첫 월급을 타면 주임님께 꼭 저녁을 사고 싶다고" 그래서 난 대답했다. "다른 건 몰라도 수연이가 사주는 저녁은 꼭 먹겠다"고 가슴속은 기쁨에 울고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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