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시인·회인중 교사)

지금까지 20회가 넘는 긴 연재를 해왔습니다. 그 동안 이야기된 내용을 간단히 정리한 다음에 다음 순서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빨강 파랑 노랑이라는 색의 3요소가 있어서 이것들의 조합으로 수많은 빛깔을 낼 수 있듯이, 시에도 3가지 요소가 있다고 했고, 그것을 <시의 3원소>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시의 3원소란 빗대기, 그리기, 말하기를 가리킵니다. 이 세 가지 요인이 혼자 쓰이거나 다른 것과 섞여 쓰이면서 다양한 시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빗대기 - 동일시의 시학 : [1]형
②그리기 - 이미지의 시학 : [2]형
③말하기 - 이야기의 시학 : [3]형
④뒤섞기 - 변형과 종합의 시학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까지 <①빗대기-동일시의 시학 : [1]형>에 대해서 알아본 셈입니다. 우리가 알아본 동일시의 시학은 사물이 상황의 비슷한 점을 서로 연결시켜서 생각을 전달하는 양식을 말합니다. 여기에는 비유와 상징이 해당한다고 했습니다.
이제부터는 2번째인 그리기([2])의 방법으로 쓰인 시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시를 그리기의 방법으로 썼다는 것은, 이미지의 기법을 말합니다. <②그리기-이미지의 시학 : [2]형>입니다.

2. 그리기 - 이미지의 시학 : [2]형

그런데 시는 이미지가 언제나 쓰입니다. 인간의 5감으로 받아들인 것을 이미지라고 하기 때문에 이미지가 안 쓰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미지를 특별히 강조하는 것은, 시에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이미지를 쓰기 때문이고, 그런 방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나는 배가 고파서 밥을 먹었다.>는 문장을 봅시다. 이것은 밥이라는 이미지가 있고 그것을 삼키는 사람의 모습이 연상되기 때문에 어떤 모습인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런데 시에서는 이런 것을 이미지라고 하지 않습니다. 시에서 말하는 이미지란 어떤 내용을 환기시켜주거나 암시해주는 이미지를 말합니다. 특히 이런 것을 일러 엘리어트는 "객관적 상관물"(Objective Correlative)이라는 굉장히 어려운 용어를 썼습니다. <객관적>이라는 말이 어려워서 저는 <명징한>이라는 말로 바꿔서 씁니다. 이 말도 어렵다구요? 하하하. 그러네요. 아무리 찾아도 쉬운 말이 없네요. 좀 더 쉬운 말이 있으면 좀 알려주십시오. 그러면 바꿔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앞의 말이 시의 이미지가 될까요? 이 말의 정황을 짐작케 해주는 말을 덧붙이면 됩니다. 예컨대,

친구가 죽었다.
나는 배가 고파서 밥을 먹었다.

이렇게 해놓으면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 달라졌을까요? 똑같은 말이지만, 앞에 붙은 <친구가 죽었다.>는 상황이 드러내는 보이지 않은 암시 때문입니다. 친구가 죽으면 슬퍼해야 하는데, 이 사람은 배가 고팠습니다. 그래서 밥을 먹었습니다. 친구의 죽음을 슬퍼해야 하는 것은 감정의 문제이고, 배고픔은 생존의 문제입니다. 생존의 문제가 감정의 문제를 지배하는, 인간 본연의 갈등이 이 문장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따라서 배가고파 밥을 먹었다는 이 단순한 문장은, 앞의 친구가 죽었다는 상황 제시로 인해서 전혀 다른 뜻을 환기시켜주고 있습니다. 시에서는 이와 같이 이미지를 무언가 다른 것을 암시하기 위해 사용합니다. 그리고 이미지를 이렇게 사용하는 법을 저는 '그리기([2])'라고 이름 붙인 것입니다.

이미지는 현대시에서 가장 중요하게 사용하는 기법입니다. 그래서 시를 쓰는 사람이 이 방법을 모르면 망신당하기 십상입니다. 얼마나 중요한지 1930년대에는 영미 시에서 이미지즘이라는 한 사조가 형성될 정도였습니다. 에즈라 파운드, 흄, 엘리어트 같은 시인들이 그들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근대시 초기에 이 기법을 흉내 내다 실패한 시인들이 있습니다. 김기림이나 김광균이 그런 경우입니다. 이 기법은 1980년대 들어와서야 우리 시에 가까스로 정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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