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시인. 회인중 교사)

그러면 이번에는 이미지가 무엇인가 알아보겠습니다. 학교에서 이미지에 대해서 아주 많이 배우는데도 막상 이미지가 무엇인가를 물어보면 제대로 대답하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것을 실생활에서 적용해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지는 원래 영어에서 온 말이어서 보통은 심상이라고 합니다. 심상(心象)이란 마음의 그림이라는 말입니다. 언어가 마음속에 일으키는 그림이라는 말이죠. 예컨대, 집이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머릿속에 집을 한 채 떠올릴 것입니다. 이렇게 어떤 말을 듣고서 마음속에 떠올리는 그림을 이미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집이라고 했을 때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떠오른 집이 다 같은 모양일까요? 잘 생각해보면 그럴 리가 없지요. 왜냐하면 사람들의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각기 다른 모양의 집을 떠올릴 것입니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아파트를 떠올릴 것이고, 기와집에 사는 사람은 기와집을 떠올릴 것입니다. 다 허물어져가는 흙집에 사는 사람은 그런 흙집을 떠올릴 것이고, 헐리웃의 유명 배우들이 사는 으리으리한 집을 생각하던 사람은 그런 집을 떠올릴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말이 마음속에 일으키는 이미지는 그 말을 들은 사람의 체험에 따라서 각기 다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아침에 집 청소를 하느라고 너무 힘들었다고 말을 하면, 그 말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자기네 집에서 청소한 자기 경험을 토대로 그 '힘들었다'는 말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아무리 정확히 얘기해도 말을 통해서는 100% 정확한 전달이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환장할 일이지요. 여태까지 말은 사람들 사이의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수단이었는데, 가만히 보니 이렇게 엉망진창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언어에 기대어 우리의 뜻을 열심히 표현해왔고요.

그러면 어떻게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인류의 언어와 문화 역사는 바로 이 점을 해결하려고 몸부림친 과정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시에서 이미지를 중요시하는 것도 바로 이런 점 때문입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상대는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간단합니다. 100% 완벽하게 전달하기가 불가능하다면 최대한 내 의도에 가까이 접근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 대안으로 시인들이 생각한 것이 이미지입니다. 이미지는 언어가 지닌 애매모호한 개념을 많이 없애줍니다. 그래서 누구나 오해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들어줍니다.

예컨대,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그 사람에게 내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면 어떻게 할까요? 가장 정확한 것은 '나는 너를 좋아한다'거나 '사랑한다'고 말로 표현하는 것이죠. 과연 그렇게 하면 될까요? 사랑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이렇게 접근하는 것은 퇴짜 맞기 딱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여자에게 다가가서 '나는 너를 사랑해.'라고 얘기하면 그 여자가 '그래 고마워.'라고 답한다면 정신 나간 여자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한다는 말 가지고는 믿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에게 호의를 표한 남자치고 사랑한다고 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거든요. 그런데도 다들 단물이 빠질 때쯤이면 떠나갔습니다. 이것이 날마다 텔레비전에서 보는 드라마의 주제입니다. 그러니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에 여자가 자신의 삶을 맡기겠어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죠. 사랑한다는 말이 아무리 절실해도 그 말에는 절대로 넘어오지 않습니다.

만약에 사람들의 영혼이 깨끗했던 조선시대라면 모를 일이죠. 세상은 이미 너무 많은 거짓말을 해버렸습니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말은 숭고한 말인데도 이렇게 때가 묻어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작전을 바꾸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굳이 말을 안 해도 압니다. 저 사람이 날 좋아하는구나! 그러면 어떻게 해야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요? 방법을 생각해보세요. 굳이 말을 안 해도 상대에게 사랑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가장 흔한 방법은 꽃을 건네주는 것이죠. 한 번 가지고는 안 되겠지만, 몇 차례 꽃을 받은 여자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녀석이 날 사랑하는가보구나?' 그러면서 속으로 가늠하죠. 받아들일까 말까? 그리고는 좀 더 지켜봅니다. 그래서 믿음이 가는 행동을 계속하면 못 이기는 척 받아들이고 믿음이 가지 않으면 모른 체합니다. 이런 심리를 눈치 채지 못하면 사랑하기는 글른 겁니다.

이미지는 이런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애매모호한 관념어를, '꽃을 건네는 마음'이라는 누구나 다 알아챌 수 있는 상황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시에서 이미지를 쓰면 주제가 직접 드러나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상황이나 묘사 뒤로 숨어버립니다. 그래서 언뜻 보면 주제가 잘 잡히지 않습니다. 어려워지죠. 그렇지만 이미지를 잘 구사한 시에서는 처음에 무슨 소린지 감이 잘 안 잡히다가도 시를 다 읽은 순간에 머릿속에서 그림 하나가 떠오릅니다. 그 위에 감동이 겹칩니다. 아하, 그거구나! 하고는 무릎을 탁 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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