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이던가, 잘 아는 사람이 사고로 다리에 기브스를 한적이 있었다. 못말리는 영화광인지라 그래도 영화를 안보고 살수는 없어 부지런히 극장엘 다녔다고 했다. 그러면서 목발을 짚고 극장에서 자리를 잡는게 불편하고 힘들더라고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때는, 대부분 계단으로 돼있는 극장통로가 누군가에게는 불편할수도 있었겠구나, 그 정도로만 생각하고 넘어갔었다.

 그런데 바로 얼마 전 어디에선가 제1회 장애인영화제가 열린다는 예고기사를 읽었다. 이번에는, 완전 영화제 홍수로군, 이젠 보다 생산적인 것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그냥 넘겨버렸었다. 그리고 며칠 뒤 그 장애인 영화제가 성황리에 끝났다는 후속기사를 읽었고, 읽으면서 얼굴이 화끈거리는 걸 숨길 수 없었다.

 그 기사는 난생 처음 영화를 보고 듣게된 시·청각장애인들 2천5백여명이 벅찬 가슴으로 대형스크린에서 영화들을 감상했다고 전하고 있었다. 한국농아인협회 주최로 지난 11월2일 부터 5일까지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이번 영화제에서는 현재 「쉬리」의 기록갱신 여부가 주목되는 「공동경비구역JSA」를 비롯, 「박하사탕」「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등 21편의 장편영화와 「스케이트」 등의 단편영화,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등이 상영됐다. 특히 비장애인들과 같은 시간대에 화제의 극장상영작을 본다는 기쁨은 유난히 컸던지 「공동경비구역JSA」는 앵콜상영요구도 있었다고 한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보통의 영화관에서 보기 힘든 몇가지 도구가 등장했다고 한다. 청각장애인들이 청신경을 이용해 소리를 듣는 「골도기기」와,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장면과 상황을 설명하는 성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이어폰이 그것. 어찌보면 너무도 간단한 이같은 기구의 도움으로, 평생의 꿈이었을 수도 있는 극장에서의 영화관람을 마친 관객들은 많이 행복해했다고 한다.

 이번 행사에 참가한 장애인들과 관계자들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이들의 어려움에 나몰라라 했던 이들에게 깊은 반성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렇게 큰 스크린에서 보니까 더 실감난다. 내가 장애인이 아닌 것 같다』『제작비의 1%도 안되는 돈이면 장애인용 특수 한글자막을 넣을 수 있다. 외국영화는 일반인에게 보이지 않는 장애인용 특수자막을 깔아놓아 장애인들은 불편없이 특수안경을 끼고 영화를 볼수있다』『장애인 역시 문화를 향유할 권리가 있고 이들 역시 영화를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은 것이 문제다』

 개막식에 참가한 정지영감독과 배우 문성근씨가 부끄러움을 토로했다는 것과 함께, 이번 행사가 장애인 스스로 만든 자리임을 덧붙인 이 기사는 「주위의 배려만 있으면」 비장애인들과 다름없이 그들도 영화를 즐길 수 있다는, 너무도 간단하지만 너무나 어이없게 잊고있던 사실을 강조하고 있었다.

 쉽게 말하길, 영화는 우리들에게 꿈과 위로를 전해준다고 한다. 하지만 그 꿈과 위로가 더욱 절실할 수 있을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있었음을 이번 장애인영화제는 부끄러움과 함께 일깨워준다. 바라건대, 장애인들의 일상적인 영화관람을 가능케하는 노력들이 당장 시작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년도에는 영화판에서 힘깨나 쓰고 돈깨나 있다는 많은 이들이 함께 마련하는 보다 성대하고 즐거운 제2회 장애인영화제를 만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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