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정 前 청주시장의 인생이야기

'직지'는 불교의 참선(參禪) 사상을 가르치기 위해 저술한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 )」의 표제다. 이 책은 고려 말 고승 백운화상(俗名 景閑)이 저술한 것을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제자들이 금속활자로 간행한 것이다.

이러한 '직지'가 세계 학계에 알려지게 된 것은 1972년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도서의 해'를 기념하여 프랑스 국립 도서관이 개최한 국제 도서전에 출품되었을 때부터이다. 그 후 30년이 지난 2001년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됨으로써 세계문화사에 직지의 가치와 위상이 확실하게 정립되었다.

'직지'가 지니고 있는 가치와 의미는 무엇인가, 또'직지'가 한국의 청주에서 간행되어 어떤 경위로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소장하게 되었는가? 그리고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기까지의 과정을 역사의 기록으로 정리하고, 미래 지향의 관점에서 '직지'와 관련하여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인류 문명 발달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세계의 석학들은 네 번의 정보 혁명이라고 말한다. 제1차 정보 혁명은 언어의 발명이고, 제2차는 문자의 발명, 제3차는 금속활자의 발명, 제4차는 컴퓨터의 발명이다. 유럽인들은 제3차 혁명의 주인공으로서 구텐베르크에 대한 존경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금속활자 발명을 통해 인류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준 역사적 사실들에 대해 명예와 긍지를 가지고 그 보전과 문화적 우월성을 지속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직지'는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보다 78년 앞선 1377년(고려 우왕 3년) 7월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된 현존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이라는 사실이 '직지' 하권 끝부분에 "선광칠년정사칠월 청주목외 흥덕사 주자 인시(宣光七年丁巳七月 日 淸州牧外 興德寺 鑄字 印施)"라는 명문으로 실증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2001년 9월 4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됨으로서 '직지'가 인류 공동의 문화 자산으로서 가치와 위상이 확실하게 되었다.

또한 '직지'는 우리 민족이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한 슬기로운 문화민족임을 입증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기도 하다.

인류 문화의 보배로서 한민족의 문화적 자긍심으로 세계 속에 인식되어야 할 '직지'가 프랑스로 건너가 어두운 장서에서 오랜 세월 동안 잠자고 있게 된 경위는 무엇인가?

1886년 5월 한불수호통상조약(韓佛修好通商條約)이 조인되었고 초대 주한 공사로 콜랭드 프랑시(Collin de plancy)가 부임하여 1888년부터 1906년까지 두 차례 전후 13년을 근무했다. 그는 열성적인 고서(古書) 수집가였다. 귀국하면서 수집한 고서를 본국으로 가져갔는데 그 중에 '직지'가 포함되어 프랑스로 가게 된 것이다.

그 후 프랑스로 간 우리의 고서들은 경매로 팔렸고 '직지'는 고서 수집가 앙리 브베르(Henri vever)가 구입하여 소장하다가 1950년경 그의 유언에 따라 프랑스국립박물관에 기증되어 하권(下卷)만이 현재 보존되어 있는 것이다.

1972년 5월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개최한 '세계 도서의 해 기념 동양의 보물 '책''이라는 특별전시회에 '직지'가 금속활자본으로 출품되었고, 그 때 열린 '국제 동양학 학자대회'에서 당시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근무하던 교포 학자 박병선 박사가 '직지'가 금속활자로 인쇄되었음을 처음 발표함으로써 학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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