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서산 해미읍성

◇해미읍성의 밤풍경


서해안고속도로에서 해미나들목으로 빠져나오자마자 시야에 들어오는 해미읍성은 서산지역 역사의 흔적과 천혜의 자연이 공존하고 있어 역사와 자연을 체험하기에는 최적의 테마 관광지다.

가야산을 끼고 흐르는 용현계곡과 백제의 미소로 대표되고 있는 마애삼존불상 등 유적지를 비롯한 드넓은 초지와 함께 살아 숨쉬는 해미읍성을 중심으로 인근의 국내 최대의 천주교 순교성지가 매년 수많은 관광객과 순례자들을 맞는다.

해미읍성은 거의 대부분의 성곽이 원형 보존된 우리나라 대표적인 읍성(邑城)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조선 후반기 대대적인 천주교 박해사건 때 수천의 천주교도들이 순교한 성스러운 곳이다.

특히, 해미읍성과 5분 거리에 있는 천주교 성지는 서산을 넘어 충남 서부권의 최대 관광지로 꼽힌다.

때문에 봄이나 가을이면 많은 학생들이 수학여행의 단골 코스로 붐비고 천주교도들이면 누구나 이곳을 찾고 있는데 해미읍성을 관광한 후에는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천주교 순교성지를 둘러보는 것이 좋다.

관광객들로 붐비는 해미읍성과 천주교 성지 뒤늦게라도 이곳을 지나친 걸 알면 땅을 치고 후회한다고들 한다.

◇해미읍성의 복원가옥 설경

해미읍성은 조선 성종 22년(1491년) 왜구의 침입에 대비해 쌓은 읍성으로 고창의 모양성이나 순천의 낙안읍성과 함께 원형이 잘 보존된 성이다.

그 중에서 해미읍성은 우리나라에 남은 읍성 중에 보존상태가 가장 양호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2㎞ 둘레의 성벽은 매우 훌륭한 산책코스다. 본래 해미읍성은 충청도 병마절도사의 영. 즉 사령부가 있었던 곳으로 조선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또한 처절한 역사적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성으로 가치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100여 년 전에는 일제에 대항한 마지막 의병이 장렬한 최후를 맞은 곳이다.

이러한 수난의 역사가 알려지면서 이곳 해미읍성에서는 '여명의 눈동자' 등 많은 드라마와 영화촬영장으로도 이용되어 왔다.

그보다 앞서 동학혁명 때에는 북접군의 본거지로 사용되었고 병인박해 당시에는 천주교인 1천여 명이 고문과 생매장으로 집단 순교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런 역사적인 장소인 해미읍성에서 매년 변함없이 축제가 개최된다.

해미읍성은 조선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마치 작은 조선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읍성내의 관아 안에서는 관아에서 벌어지는 재판과정을 마당극으로 보여주고 관아의 업무를 맡아보던 육방들이 직접 나와서 육방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진다.

또한 궁중의상과 함께 조선시대의 복장을 체험해 볼 수도 있다. 옛날 옥사 터가 있던 자리에서는 곤장형틀체험과 감옥체험이 기다리고 있다. 곤장형틀체험에서는 직접 십자형틀에 누워 곤장을 맞아 볼 수도 있고 감옥에서 나무로 만들어진 칼을 써볼 수 도 있다.

병영을 재현해 놓은 막사는 함께 온 가족이나 일행들과 함께 장군이 되어 회의를 진행해 볼 수도 있다. 군영체험구역을 빠져 나오면 민속놀이체험구역이 눈앞에 펼쳐지고 전통놀이와 함께 옛날생활도구들을 체험하고 안내도우미를 통해 생활속에 묻어있는 선조들의 지혜도 배울 수 있다.

해미읍성 안에는 항상 갖가지 체험을 즐기고 전통 민속놀이도 즐기고 지역 주민들이 준비하는 다양한 장르의 이벤트도 즐길 수 있다.

◇ 해미순교 성지


그러나 해미읍성은 천주교 역사에서는 피의 순교역사를 써 내려간 슬픔을 간직한 장소이기도 하다.

해미읍성은 1866년 대원군의 천주교 박해 때 천주교도 1천여 명이 처형된 형장으로 이용됐다. 정문을 지나 성안으로 들어서면 60m앞 정면에 커다란 고목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수령 300년이 넘은 이 나무가 바로 사형대로 사용됐다.

천주교도들을 거꾸로 매달아 숨지게 한 이 호야나무는 수난의 역사를 대변하듯이 굵은 곁가지가 없이 수령에 비해 잔가지들로 우거져 있다.

해미읍성의 서남쪽 5분 거리에는 이 때의 순교자를 기리기 위한 순교탑이 있는데, 해미성지로 건립되어 천주교인들의 순례가 끊이지 않는 성지이다. 해미읍성을 중심으로 한 서산 지역은 18, 19세기 천주교 신도들의 순교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서산을 비롯한 내포 지역은 18세기 후반 내포의 사도로 알려진 이존창에 의하여 천주교가 널리 퍼지게 되었고 천주교의 유포가 정치문제화 되면서 순교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1799년 순교한 박취득은 해미에서의 최초의 순교자였다. 이후 수백 명의 순교자가 나왔는데 그것은 이 지역의 활발했던 천주교 교세와 관련이 있지만 아울러 내포8현을 관할하던 진영과 감옥이 해미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때 진영의 감옥에 갇힌 천주교들은 교수형, 참수형, 몰매질 등 갖가지 방법으로 참혹히 처형당하였으며 1868년에는 많은 인원을 생매장한 일도 있었다.

해미성지 내에는 진둠벙이라는 곳이 있는데 1866년부터 1872년 사이에 1천 여명이상의 신자들이 팔이 묶인 채로 거꾸로 떨어뜨려져서 생매장 당하였다. 이 순교자들의 유해는 대부분 홍수로 유실되고 1935년에 그 일부를 발굴하였다. 이 일대에서 생매장 당한 이름 모를 순교자들을 기리기 위하여 1975년에 높이 16미터의 탑을 세웠고 야외 미사장을 개설하였다.

지난 2003년에서는 무명 순교자 성지성전을 신축하여 순례자들이 미사를 볼 수 있도록 하여 매년 수만 명의 천주교 신자들의 순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희득 / 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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