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대 '한반도 출토 곡류의 연구성과' 세미나

전 지구적으로 인류생존과 국가안보 차원에서 식량문제가 강조되는 시점에 우리가 주식으로 이용하는 쌀과 콩류의 한반도에서의 기원에 대한 흥미있는 세미나가 열렸다. 그동안 통설인 중국으로부터의 전래설이 아닌 한반도 재배기원지설이 새로 등장해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재)한국선사문화연구원이 주최하고, 충북대학교 농업과학기술연구소가 주관해 지난 5일 열린 벼와 콩류를 중심으로 한반도에서 출토된 곡류의 동정법과 연구성과에 대한 박태식 전 국립식량과학원 연구관의 세미나 주제발표 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 편집자

한반도에서 벼가 넓게 재배된 청동기 이후 약 천 년이 지난 삼국시대의 벼는 어떻게 변화했을까.

박 박사는 벼농사가 광범위하게 전개된 청동기시대 유적인 부여 송국리 집터 출토 탄화미(B.C. 6∼7C)와 삼국시대(백제:부여 가중리, 청원 연제리, 신라:경주 남산신성, 대구 칠곡, 고구려:연천 호로고루)의 탄화미의 평균크기와 표준오차를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를 요약하면 청동기 송국리 탄화미에 비해 삼국시대에는 모든 지역의 탄화미의 크기가 커졌다. 다만, 모양새에서 남쪽 지역은 둥근 단립형(短粒型)으로 바뀌었으나 북쪽지역은 바뀌지 않고 비슷했다. 이는 삼국중 백제, 신라는 벼농사가 활발했음을 삼국사기 등의 사서에서 볼 수 있으나 고구려는 주활동 무대가 북쪽지방이어서 벼농사에 대한 기술이 떨어졌음을 짐작케한다. 또한 벼 낟알이 커진 것은 농부가 수량이 많고 탐스런 이삭을 선호해 지속적으로 선택에 의한 선발과 품종분화가 이뤄진 것을 의미한다.

박 박사는 이날 세미나에서 소로리 볍씨에 대한 연구결과도 함께 발표했다.

1997년과 2001년 청원군 옥산면 소로리에서 발굴된 볍씨(약 15.000년전 추정)는 그동안 학계에서 제기된 신석기 중기의 중국 대륙이나 바다를 통한 벼의 한반도 전래 경로로는 설명이 부족하다는 주장이다. 즉, 소로리 볍씨는 최대 빙하기 이후 한반도가 중국대륙과 하나의 대륙으로 연결되었을 당시 한국조상중 남방계의 한 부류가 볍씨를 가지고 중국대륙 남부지역에서 해안을 따라 동북진하다가 당시 옛 금강하류를 거쳐 소로리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박 박사는 이를 '옛 금강-소로리 볏길'로 명명했다.

또한 유전적 변이가 큰 소로리벼는 빙하기 이후 지리적, 생식적 격리가 발생함에 따라 한반도의 자연환경에 적응하게 되어 변이가 적은 고대벼로 종의 분화(논벼, 수답)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했다.

콩류의 기원지도 중국으로부터의 전래보다는 한반도 재배기원지의 가능성이 제기됐다.

최근 청동기시대 유적인 회령 오동, 평양 남경과 양평 양근리, 보령 평라리 등 한반도 다수 지역의 강 주변과 구릉지에서 무문토기와 벼, 조, 기장, 보리, 밀 등과 동반해 다수의 탄화된 콩, 야생콩, 반재배콩, 팥, 야생팥, 녹두 등의 두류가 출토되어 한반도에서는 청동기시대(1500∼300 B.C.)부터 두류(콩, 팥)가 널리 재배된 것으로 보여진다.

콩의 재배 기원지에 관해서는 옛 문헌, 출토유물 및 야생콩과 재배콩의 유전적 다양성에 근거해 다수의 설이 존재하나 일반적으로 콩의 기원지를 중국 남부로 많이 주장하고 있다. 팥의 재배 기원지에 대해서도 중국 기원지설이 유력하나 일본에서는 출토유물과 유전적 다양성을 근거로 일본 기원설을 주장하며, 중국과 한국은 야생팥의 분포가 적어 기원지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한반도에는 콩의 야생형인 돌콩과 팥의 야생형인 새팥과 근연종인 애기새팥이 널리 자생하고 있으며, 재배종의 유전적 다양성이 매우 높은 편이나, 다수의 학자들이 유전적 다양성을 분석할 때 중국과 일본의 유전자원을 중심으로 분석해 세계의 학계가 한반도 두류의 유전적 다양성을 간과한 면이 많다.

최근 한반도 남부에서 속속 출토되고 있는 청동기시대의 탄화 콩과 팥 유물과 현 한반도 콩과 팥의 유전적 다양성을 종합해 보면 지구의 최대 빙하 발달기 이후 11,000년 전 중국 대륙과 한반도가 분리된 후 한반도에서 독자적으로 한반도인의 선택과 순화에 의해 재배두류가 발달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한반도가 콩과 팥의 재배기원지 중의 하나라는 설을 뒷받침한다고 본다.

앞으로 두류의 유물이 추가 발굴되고, 콩과 팥의 진화를 구명할 수 있는 DNA 분석에 의한 분자시계(molecular clock)를 규명하게 되면 한반도가 콩과 팥의 재배기원지로 널리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 박익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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