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희의 세상읽기]

살아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살아 있음으로써 누군가를 사랑 할 수있고 꿈과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죽음 또한 비켜갈 수없는 숙명이다. 어찌보면 태어남은 시작이요 죽음은 끝 같으면서도 죽음이란 또다른 시작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누군가는 '인간은 죽어서 비로소 완전히 태어난다,고 했던가.

우리모두는 늘 누군가의 죽음을 맞으며 참담하고도 비통한 마음으로 죽은자를 보낸다. 부모를 잃은 자식이 그렇고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아내 또한 그렇다.그러나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은 더욱 애절하고 비통하다. 단장(斷腸)의 아픔이 그것이다. 어떻게 글이나 말로 그 아픔을 표현할 수있을까. 그래서 '자식은 부모가 돌아가시면 땅에 묻고 부모는 자식이 죽으면 가슴속에 묻는다'고 했던가.

며칠전 일이다. 낮 12시쯤 60대의 남자 손님이 필자가 운전하는 택시를 탔다. "어서 오세요. 어디로 모실까요"라며 손님을 맞자, 손님은 힘없는 말투로 "0000으로 가주세요"라며 창밖을 바라볼 뿐이다. 손님이 가자고 한 곳은 청주시내 인근에 위치하고 있는 납골당이었다.

납골당에서 돌아오는 길에 조심스럽게 손님에게 말을 건넸다. "손님, 어디서 오셨습니까" "네 서울에서 왔습니다" "그런데 납골당엔 어느분을 모셨기에 그렇게 수심이 가득해 보이십니까".

그러자 손님은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시집도 못간 딸이 죽어 저기에 있습니다. 참 착하고 예쁜 딸이었는데 말이오. 대학을 졸업하고 여의도 증권회사에 취직하여 잘 다녔는데 그만.…. 불의의 사고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렇게 숨진 딸을 화장 한 후 납골당에 안치 했지만 우리 딸은 영원히 내 가슴속 깊이 묻었습니다"며 눈물을 훔친다.

29일 우리들도 천안함의 46용사들을 가슴속에 묻었다. 또한 이들을 찾아 나섰다 실종된 금양호 선원들도 우리들의 가슴속에 함께 묻자.

금양호 선원들은 누구인가.

거치른 파도를 헤치며 고기를 잡아 생계를 이어가던 어부들이다. 어부들은 검게탄 피부와 갈라진 손등으로 만선의 기쁨을 위해 그물을 내리고 걷어 올리는데 밤낮이 없다. 생업을 전폐하고 실종된 천안함 장병들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군함이 침몰하는 초유의 국가 비상사태 속에서 자신들의 생업 보다는 나라가 중요했고 실종된 장병들을 찾는 것이 최우선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이런 어부들이 천안함의 침몰 해역을 떠나 어장으로 회항하다가 예기치 못한 사고로 침몰하고 말았다. 실종된 어부들은 물론 그 가족들 모두가 우리들의 부모요 형제이며 또 이웃이고 나라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제몫을 다하려고 땀흘리던 민초들 아닌가. 그러기에 이들도 우리들 가슴속에 함께 묻어야 하는 것이다.

이들을 가슴에 묻은 우리들은 자식을 먼저 보내고 오열하는 부모들의 단장의 아픔과, 남편을 먼저 보내고 절규하는 아내와 자식들의 슬픔과 형과 동생을 잃은 형제들의 비통함을 함께하며 망연자실 했다.

동족상잔의 아픔을 겪었던 우리들은 아직도 정전(停戰)상태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전쟁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휴전선 넘어 북한과 대치하며 잠시 휴전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모두가 이를 잊고 있을때 천안함이 격침되면서 다시한번 일깨워주었다. 야만적인 북한의 도발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고.

천안함 46용사들의 넋이 서해바다의 수호신으로 다시 태어나 만행을 저지른 이들을 응징할 것이라 믿는다. 이땅에 더 이상 단장의 아픔을 겪는 부모들이 없도록.

/ 前 언론인



(이 칼럼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지원으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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