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들바람'

우리나라 산하 어느 산골이나 들판을 가도 돌로 깎아서 세운 돌부처를 만나게 되는데 우리는 이들을 미륵님이라 부른다.

우리 조상들은 먼훗날에 세상에 출현한다는 교설에 따라 미륵을 석상으로 많이 조성했다.

특히 불교적인 믿음과 전통사회의 민간신앙이 조화를 이루면서 미륵은 마을 지킴이 대상물인 장승, 돌탑과 같은 마을 신앙으로 발전했다.

증평군 문화답사를 하던중 민중들의 신앙 대상이 되었던 미륵님을 만났다. '남하리 석조미륵보살입상'과 '율리 석조관음보살입상'이 그것. 얼굴 형상에서 세월의 수난사가 읽혀진다.

국란으로 인해 피할 수 없었던 시대의 아픔, 민중들의 잘못된 오해와 민간신앙적 속설로 인한 수난의 역사가 교차했다.

남하리 미륵상은 아랫부분이 땅 밑에 묻혀 있어 전체적인 크기는 알 수 없으나 당당한 위엄을 갖추고 있다.

통견(通肩)인 법의(法衣)는 두팔에 걸쳐 내렸고 배 아래로 활 모양의 주름이 보이는데 고려초 10세기때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옆에 나란히 있는 두개의 작은 불상은 머리부분이 없던 것을 만들어 붙인 흔적이 엿보인다. 미륵상과 달리 이 작은 불상은 그 붙인 부분이 너무 조악하여 균형이 맞지 않는다.

차라리 그냥 잘려나간 머리부분을 배제하고 몸 부분만 두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 남하리에서는 농경문화의 원초적인 '장뜰두레'를 되살리고 그 문화를 보존하기 위한 박물관과 전수회관을 짓고 있다. 이곳의 미륵님은 그 건물을 바라보고 있다.

'남하리 석조미륵보살입상'이 이곳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그것이 우리의 정체성이고 증평의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다만, 문화재 불상에 있어 머리가 잘려 나가고 몸통이 없는 불상을 다룸에 있어 좀 더 신중하게 접근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조악함도 문화라면 어쩔 수 없지만, 한번만 더 고민한다면 전통 문화의 정신적 가치까지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이 분명히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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