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선 양극에 석영선 연결 … 심근 수축·완화시 전류 감지

커다란 탁자 위에 개 한 마리가 퉁방울 같은 눈을 굴리며 버티고 서있었다. 그의 두 발은 작은 수조 안에 담겨 있었고, 앞에는 커다란 상자와 알 수 없는 이상한 기계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정말 이 장치를 심장의 운동을 잡아낼 수 있을까?"

다소 우스꽝스러운 광경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얼굴에는 나름대로의 엄숙함이 베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진지한 얼굴로 두발을 물통에 담근 채 멍하니 서있는 개 한 마리에게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자, 여러분 주목하여 주십시오. 이제 전원을 연결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시작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장내는 얼어붙은 듯 고요해졌다. 이제 잠시 후면, 모든 것이 결판날 것이었다. 탁자 위에 서있는 개가 새카맣게 타서 뒹굴던지, 아니면 사람들의 입에서 환호성이 터지든지. 이도 저도 아니면 개나 사람의 시선이 모두 한 사람에게 쏠려 비난의 눈초리를 보낼 것인지.

아인토벤은 애써 태연한척 했지만 굳게 잡은 그의 두 손에선 땀이 축축하게 배어나오고 있었다.

드디어 진행자의 두 손이 스위치로 옮아갔다. 그 순간 아인토벤은 두 눈을 찔끔 감아버렸다. 실패의 순간을 참아낼 것 같지 않아서였다.

"이럴 수가, 이토록 정교하게 움직이다니!", "마치 심장의 움직임을 그대로 보는 것 같군!" 한 두 사람에게서 시작된 울림은 점점 퍼져나가 마침내 장내에 모든 사람을 술렁이게 했다.

"검류계의 가는 선이 심장 박동에 따라 일정하게 움직이고 있어. 대성공이라고!"
"정말인가?"
"그럼!"

아인토벤은 깊게 심호흡을 하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는 순간이었다. 지나간 일들이 주마등처럼 그의 눈앞을 지나쳐갔다.

의사라면 당연한 일이긴 했지만, 아인토벤이 가진 집착은 놀라울 정도였다. 그는 심장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했고, 특히 심장의 운동력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심장의 규칙적인 박동을 육안으로 점검할 수만 있다면 심장에 관한 각종 질병과 이상을 쉽게 알아낼 텐데.' 당시에는 심근의 전위 변화를 측정하는 여러 차례의 실험이 있긴 하였으나 모두 아인토벤에겐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는 좀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기구를 바라고 있었다. '그래! 내가 직접 이 일에 뛰어 들어야겠다. 분명 방법이 있을 거야!'

그는 병원 문에 임시휴업이라는 커다란 간판을 내걸고는 틀어박혀 연구를 시작했다. 그러나 결과는 그의 의욕을 따라주지 못했다. 번번이 실패만 거듭 되어 그의 사기를 꺾어놓곤 했다.

'실패 따위는 두렵지 않아. 측정 할 수 없는 무한한 신비로 가득 찬 신체를 탐험하는 데 한두 번의 실패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지!'

잇단 실패로 주위 사람의 눈총을 받을 때도 그는 이렇게 자신을 위로하며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1903년, 아인토벤 자신의 의지력 덕분인가? 그는 마침내 단선 검류계라는 쓸모 있는 기기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전자선의 양극 사이에 은도금을 한 석영 선을 연결한 것이었는데, 이것이 심근의 수축 시에 발생되는 전류를 감지하녀 한 방향으로 통과시키는 방식이었다. 이를 통해 아인토벤은 심장의 수축과 완화 시에 서로 다른 뚜렷한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비로소 심전계라 부를 수 있는 기기가 탄생한 것이었다.

심전계 실험의 성공이후, 아인토벤은 세계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 되었다. 세계 각국에서 그의 기기에 관심을 보였고, 그의 설명을 듣고자 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그가 쉬지 않고 후속 연구로 돌진했기 때문이다.

그는 심장의 변화에 의한 파동을 종이 위에 영구히 보존시킬 방법을 연구해 심전도 기록기를 고안해내고, 심전도의 모양을 분석하는 데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그야말로, 의학자요 과학자다운 자세였다. 그의 부단한 노력으로 인해 우리는 지금의 체계적인 심전도 측정기를 갖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의 최초의 발명이후 약 20년이 흐른 1924년, 그는 노벨 의학상으로 그의 청춘을 건 연구의 대가를 다소나마 받게 되었다. /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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