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

# 역할 모델(Role Model)

몇 년 전,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 자신의 '역할 모델'에 대해 발표를 시킨 적이 있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학생들이 "없다, 모른다,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식으로 답변을 했다. 더 놀라운 것은 어떤 학생의 반문이었다.

"그러면 선생님의 역할모델은 누군가요?"

그 때 나는 순간적으로 화들짝 놀라 겨우 "중학교 1학년 때 국어선생님"이라고 답변했다. 왜 '놀랍게도'라는 표현을 썼는지, 그 이유는 이렇다. 자신의 부모님이 엄연히 생존해 있는데도 "없다, 모른다, 생각해 본 적이 없다."로 대답하는 것과 같으니까.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님이 있다면 자신이 스스로 살아갈 힘, 즉 자생력의 바탕과 방향이 되는 역할 모델도 있기 마련이다. 대체로 청소년 시기에 갖게 되면 매우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휘하게 해서 목표지향적인 삶을 충실히 영위하게 한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관련 교과 시간에 학생들에게 자신의 역할 모델을 찾도록 한다. 학교에서 매일 접하는 교사 이외에 '직업적으로 본받고 싶은 사람'이 누구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그러면 그 직업인이 그 학생의 역할 모델이 된다. 예컨대, 김연아 선수는 미쉘 콴을,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변영태 외무부장관을, 골프선수인 신지애 선수는 박세리 선수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링컨 대통령을 본받고 싶어하는 역할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 나의 역할 모델

인식하지 못해서 그렇지 누구에게나 역할 모델은 있기 마련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어떤 학생이 나에게 반문했을 때 순간적으로 놀라고 당황했지만 나는 중학교 1학년 3반 때 담임이셨고 국어를 가르치셨던 '황상국'선생님을 자신 있게 나의 역할 모델이라고 말해 주었다. 궁벽한 산골에서 살다가 걸어서 3시간 가까이 걸리는 시내 중학교로 진학했을 때, 나는 무척 운이 좋았다. 엄격하면서도 자상한 담임선생님은, 궁기가 뚝뚝 떨어지는 시골 아이의 처지를 금방 알아보시고 산꼭대기 절벽 위에 있던 자취방까지 두 번이나 찾아오셨다. 좁고 어두운 방에 걸터앉아서 한숨 쉬던 모습, 학급 일을 시킨 뒤에 사주셨던 자장면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연탄가스에 취해서 아침도 못해먹고 점심도시락도 준비 못해서 등교했을 때, 머리도 아프고 어지러워서 운동장 구석에 있는 수양버드나무 아래 의자에 누워있던 나를 찾아서 당신의 도시락을 주셨고, 버티다가 혼나고 결국 나는 울면서 도시락을 먹었다. 그러나 내가 그 분을 존경하고 '저 분처럼 살아야지'한 것은 자장면도 아니요 도시락 때문만은 아니다. 잘 가르치고 못 가르치고는 기억이 없다. 내가 만약 사람을 찾는 어느 텔레비전 프로에 나온다면 나는 주저없이 그 분을 찾을 것이다.

나를 진심으로 인정하고 이해해 주신 그 분은 내가 본받고 싶은 나의 역할 모델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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