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거 기자단- '2galia'

 

 

'제빵왕 김탁구' 촬영이 있는 날이면 수암골 입구는 사람들로 만원입니다. 골목 골목 사투리를 쓰는 타지역 사람들도 보입니다. 드라마의 힘입니다. 사실 몇해전까지만해도 수암골은 수동으로 불렸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정착한 가난한 동네, 청주의 달동네 정도로 여겨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수동은 더이상 질척대는 삶으로 얼룩진, 가난한 동네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작가들의 시선과 원주민들의 삶이 어우러진 정겨운 동네가 되었습니다.

'우암 술래길' 코스에서 수암골은 심장과도 같은 곳입니다. 바로 이 곳에서 작가들은 원주민들과 함께 수암골의 변화를 일궈냈습니다. 작가와 주민, 동네와 동네, 청주와 다른지역의 소통까지 가능케 하는 놀라운 프로젝트를 완성했습니다.

깨지고 갈라진 벽면, 낡고 녹슨 기둥에는 그림이 그려졌고, 허름한 대문에는 문패가 달렸습니다.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골목 마다 마치 술래잡기를 하듯 예쁜 그림이 그려졌습니다.

이곳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자 이번에는 이곳을 주목하는 눈이 많아졌습니다.

드라마 '카인과 아벨', 최근에는 '제빵왕 김탁구'까지 이제 수암골은 통영의 동피랑 못지 않은 유명세를 타게 되었습니다. 드라마 촬영 모습을 보러오는 사람들도 많아졌고, 청주를 처음 오는 사람들은 수암골에 가보고 싶다는 말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쩐일인지 사람들은 드라마에 나왔던 장면들을 퍼즐 맞추듯 사진으로만 담아가는 듯 했습니다. 골목을 따라 수암골을 걸으면서도 처음 작가들이 주민들의 삶을 들여다 봤을 때처럼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는 없어보였습니다.

골목길은 제법 정돈된 모습이었지만 살짝 기울어진 벽의 안쪽만 봐도, 실핏줄같은 골목의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의 손바닥만한 마당만 봐도, 아니 그냥 고개만 돌려도 그곳엔 수암골 사람들의 삶이 있다는 것을 애써 외면하는 듯 했습니다.

 


장농 문짝을 대문으로 쓰고, 슬레이트 지붕을 겹겹이 덮어 비를 피하는 고된 삶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나아진 것이 없어보였습니다. 성인 한 사람 지나갈 정도의 좁은 골목길에는 누구네집 미싱 소리며 라디오 소리가 그대로 흘러나오고, 허물어진 오래된 벽돌은 살림살이를 감춰줄 기력도 없어보였습니다.

손바닥만한 마당을 세간살이에 내어준 집들 사이로 대문 옆 우체통 위에 조각 장판이 덮혀져 있습니다. 비바람에 떨어지지 말라고 벽돌로 꾸욱 눌러도 놓았습니다. 누군가 아주 귀한 사람의 소식을 기다리나봅니다. 살을 발라낸 뼈다귀처럼 바람에 패인 담벼락 벽돌들은 위태롭게만 보입니다.

수암골에서는 골목이 마당이고 마당이 골목입니다. 골목에서 빨래를 널고 그 곳으로 사람이 지나다닙니다. 누구네 집은 기와집이고 누구네집은 낡은 슬레이트 지붕이지만 아무려면 어때요. 인정이 넘치는 수암골인걸요.

늙은 노인들이 대부분인 수암골에서는 좀처럼 사람들을 볼 수 없습니다. 어쩌다 누군가 마주쳐도 여행자의 모습을 한 낯설은 이방인들 뿐이었습니다.

골목을 지나는데 런닝 바람의 늙은 노인이 문을 철커덕 닫는 큰 숨을 몰아 내쉽니다. 마음이 좋지 않아 보입니다. 사람들의 발길이, 지나치는 눈길이 부담스러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예술가들이 의도한 것이 주민과의 '소통'이라면 수암골에선 지금 어떤 소통이 이뤄지고 있을까.

젊은 남녀커플이 수암골의 벽화 옆에서 사진을 찍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여고생 한 무리가 피아노 건반 모양의 층계 위아래를 오르락 내리락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에게 수암골은 어떤 공간일까도 생각해봅니다.

도심 속의 섬처럼 동떨어져 있던 공간, 그곳엔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그들의 마을에도 또 다른 사람들이 들기 시작했지만, 어쩐지 내게 수암골은 거대한 전시장처럼만 보였습니다.

수암골의 속살을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처음 예술가들이 이곳을 주목했을 때처럼, 어떤 가슴 뜨거운 누군가가 수동 사람들의 고된 삶을 주목했던 것처럼, 그렇게 예술의 표피말고 그 예술이 담아내려 했던 원주민의 삶을 살피고 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수암골의 달라진 모습, 예쁜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습니다. 뿌듯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째서 나는 오늘의 수암골에서 어제의 수동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수암골에서 당신이 본 것은 무엇인가요? 사람일까요 그들의 삶일까요 아니면 그들과의 소통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드라마의 잔상인가요.

사람들의 발길이 지나다니는 골목안, 깨진 벽돌 바닥을 비집고 피어있는 채송화가 눈에 들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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