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현 법무법인 '청남' 대표변호사

얼마전 지인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한담을 하였는데, 6·2 지방선거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인지, 민선 5기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인물됨과 그들의 앞으로의 행보가 주요 주제가 되었다.

다들 희망적이라는데 동감을 하며, 어느 지역에선 전입 주민들에게 지역그림지도를 주는데 참 좋더라, 청주에 전차를 도입하면 동양의 샌프란시스코로 홍보하고 환경문제도 해결할 수 있지 않냐, 청주 규모의 도시에 제대로 된 백화점과 어린이 놀이공원이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자치단체 강당에서 1주일에 한번씩 시민을 위한 무료 공연·강연을 해 문화를 활성화시키면 어떠냐는 등의 때론 참신한, 때론 허황된 이야기가 오갔다.

물론 비관적 전망도 있어, 그 자리에 참석한 모 시민운동가는 직접 만난 민선 5기 이시종 도지사의 시민단체에 대한 관심 부족과 시민과의 대화에 대한 열의 부족을 꼬집기도 했다.

이전의 민선4기 정우택 전 지사를 수식하는 적절한 이미지를 들라고 하면, 물론 당사자로서는 억울한 측면도 있을 수 있으나, 많은 사람들은 '귀족 정치인', '귀공자'라고 한다.

그렇다면, 출범한지 50여일이 된 이시종 지사의 이미지는 어떠한가? 이 지사는 선거시절부터 '서민' 이미지를 내세워왔다.

그러나 선거과정에서 정 전 지사로부터 10억여원이나 가진 사람이 무슨 서민이냐는 비아냥을 들었을 정도로, 그가 내세운 서민 이미지라는 것은 정 전 지사의 귀족 이미지에 비교우위를 누리기 위한 정치적 수사에 불과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시민들은 이 지사를 보며, '서민'이라기보다는 '관료'라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이는 이 지사의 오랜 관료생활에서 유래한 것일 수도 있으나, 그보다는 이 지사의 그간의 태도나 행보에서 유추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관료'라는 이미지는 우리사회에서 부정적 메타포를 함유하고 있다. 과거 관료들의 횡포, 불법, 복지부동, 책임회피, 권위의식 등을 경험한 탓이다.

'관료'라는 이미지는 과거에만 부정적이지 않다. 현재와 미래에서도 부정적이다. 현대사회에서 '관료'라는 이미지가 의미하는 것은, '영혼이 없는 조직', '먹통 조직'이라는 표현처럼 '시민들과의 소통부재', '정치적 상상력의 부재'일 것이다.

현대사회는 참여, 숙의민주주의 시대다. 보다 많은 시민들이 정치과정에 참여토록 하고, 시민들간의 대화와 타협, 소수자·생태·여성·인권·미래문제 등을 충분히 배려한 심사숙려 과정을 거쳐 정책을 결정하는 시대로 진입하였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시대에 최고 정책결정권자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서 유용했던 관료주의, 실적주의, 일방주의가 아니다.

민주화된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은 시민의 참여와 소통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많은 시민들과 대화를 하면서 터득하는 정치적 상상력, 그리고 그것을 현실화할 수 있는 리더십일 것이다.

시민들은 현실정치에 불만이 많다. 그러한 불만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현실과 대비되는, 그러나 현실속에서 터득한 상상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시장, 공사현장, 분쟁현장, 시민단체와의 지루한 대화장에서 심지어 밤늦은 시간 삼겹살에 소주잔을 기울이며 시민과 대화를 하라. 그러면 책상을 마주한 관료들 머릿속의 동심원적 상상력이 아닌, 실제 현실에 바탕한 유용한 정치적, 정책적 상상력을 얻을 것이다.

시민·시민사회와 적극 대화를 하며 그 불만을 듣고 그 불만 속에 잠재된 상상력을 정책화·현실화시키는 도지사가 되었을 때, '관료'의 속성을 벗어나 '참여·소통하는 도지사', '상상력을 가진 도지사'의 이미지를 구축할 때, 스스로 새로운 시대에 요구되는, 더 큰 정치적 꿈을 꿀 수 있는 정치인이 될 것이다.

이 지사가 내세운 '함께하는 도정'의 의미가 이러한 것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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