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된 어제' 청주 모충동 쌍샘과 대성주택
'아주 오랜된 어제' 청주 모충동 쌍샘과 대성주택
  • 김정미 기자
  • 승인 2010.08.19 2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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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블로거 '이갈리아'의 골목 탐사

청주시 흥덕구 모충동 서원대학교 중문에 위치한 쌍샘, 그 곳의 실핏줄 같은 골목을 걸어보았습니다. 골목길 프로젝트를 위한 사전 탐색의 측면이 강했는데요, 이번 방문에서는 한국전쟁 당시 포로수용소 터였던 대성주택과 쌍샘 사이를 탐닉했습니다. 큰 도로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있는 골목들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꼬불꼬불 잔뜩 꼬여만 있었습니다. 손길이 닿지 않아 깨어진 길, 그 길에 버려진 생활쓰레기, 닳고 닳은 문패와 얼룩덜룩한 담벼락까지 아주 오래된 어제를 마주한 느낌이었습니다. / 편집자

# 쌍샘

서원대학교 중문 동네를 쌍샘이라고 부릅니다. 쌍샘에선 청주시내가 훤하게 내려다 보입니다. 서원대 중문 뒤에 높다란 계단을 무작정 오르면 그 길이 무심천 모충교까지 이어집니다. 서원대 중문에서 시내로 이어지는 직선도로인 셈이지요. 중문을 지나 높다란 계단을 오르면 왼쪽에 있는 동네가 대성주택입니다.

모충교는 이제 차량이 통행할 수 없습니다. 온전히 사람들만을 위한 다리이지요. 쌍샘의 좁은 골목처럼요, 대성주택의 대성소길처럼요.

서원대 중문에서 쌍샘길을 걸어보기로 합니다. 쩍-쩍- 마치 금이 간 것처럼 갈라진 골목들은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때론 미로 속에 던져진 듯 당황스런 순간도 마주하지만 막다른 골목을 돌아나오면 또 다른 길이 펼쳐지는 것이 신기합니다. 수암골(수동)이 청주의 대표적 달동네로 알려져 있지만 쌍샘과 대성주택을 잇는 골목에는 비할 바가 아닙니다.

좁은 골목에는 하늘이 들어갈 자리가 부족합니다. 벽과 벽 사이를 좁게 좁게 연결하고 있으니 해가 날 일도 별로 없습니다. 깊게 드리운 그늘벽엔 무슨 놈의 러브가 그리도 많은 것인지 철없는 청춘남녀의 설사같은 열애는 담벼락 낙서로 남았습니다.

여기 저기 미키마우스를 그려넣은 그림이 재미있습니다. 여기도 러브, 저기도 러브, 사랑을 꿈꾸었을 누군가의 러브는 구도 볼 것 같지 않은 이 은밀한 골목에서 사랑아닌 '러브로' '러브의 길'로 복제되고 있었습니다. 쌍샘의 집들은 청주시내와 서원대 양쪽을 향해 계단처럼 이어져 있습니다. 이곳이 언덕이기 때문입니다. 좁은 골목길은 앞집 옥상과 닿아 있습니다. 맨 꼭대기 집들이 가장 오래되었구요, 시절 좋아지면서 아래로 아래로 최신식 집들이 지어졌다고 합니다.

1968년부터 언덕 꼭대기 집에 살았다는 김종춘(84) 할아버지는 40여년의 청주 변화를 한 눈에 내려다보았다고 하십니다. 단층 건물은 2층으로 높아지고, 다층건물도 세워졌으며 최근엔 자작한 지붕들 위로 두산위브제니스 두개 동도 우뚝 솟았지만 화려한 그 고층건물도 할아버지 집보다 높지 못하더란 말입니다.



쌍샘 맨 꼭대기 집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바로 아래로 건물 옥상이 오밀조밀 붙어있습니다. 폴짝 폴짝 뛰어도 될 듯한 거리입니다. 대성주택 앞 교회 밑으로는 계단이 나 있는데요, 과거 어떤 시절에는 좋은 때도 있었을 이곳은 마치 마음 다친 노인처럼 시절을 견디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성처럼 높게 쌓은 담벼락과 옹벽도 인상적이었는데요. 온통 시멘트 벽면으로 둘러싸인 그곳에 서면 숨이 턱턱 막혀옵니다. 누구네 집 대문 앞, 옹벽 끄트머리 구석에 가로등 하나 설치되어 있었지만 구불구불 휘어진 회색빛 옹벽 미로에선 빛이 반사될 여지도 없어 보입니다.

쌍샘과 대성주택 사잇길을 휘젓고 나오니 다시 대성주택이 시작됐던 교회 인근이 나옵니다. 담벼락 밑에서 줄기 올린 포도나무가 보입니다. 약을 안친건지, 관리를 안한건지 익지도 않는 포도알 끝이 타들어가고 있습니다.

#대성주택

모충2구역 주거환경개선사업지구. 대성주택의 여름은 어느 해보다 후텁지근합니다. 지난 2008년 청주시와 한국토지주택공사가 도시재정비사업 추진 협약식을 체결했지만 보상계획 공고며 보상협의회 구성이 기약없이 미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LH공사는 부동산 경기침체로 인해 보상금 지급에 난색을 표합니다. 당연히 동네 주민들의 인심이 좋을리 없습니다.

대성주택은 한국전쟁 당시 포로수용소터였다고 합니다. 그곳에 판자촌이 들어서고 피난민들이 정착해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은 1971년입니다. 마구간이라는 뜻의 이른바 말집들이(담없는 집) 80채 정도 있습니 다. 대성주택은 1970년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전국적으로도 꽤나 유명세를 타고 있는 동네입니다.



대성소1길이나 대성소2길이나 대성소3길의 길이는 100m정도 됩니다. 거미줄처럼 얽힌 전깃줄들이 이 공간에 얽힌 사연들처럼 복잡해 보입니다. 누구네집 명패는 이름이 다 지워졌고요, 어른 키만큼도 되어보이지 않는 좁은 골목에선 마른쓰레기가 태워지기도 하고, 누구네는 화초를 키우고, 누구네는 빨래를 넙니다.

모충2구역이 주거환경개선사업지구로 지정된 것도 대성주택 때문입니다. 청주시는 2007년 6월 모충동 대성주택 일원을 주거환경개선사업 정비구역으로 지정한 후 토지 소유자 동의 절차를 거쳐 대한주택공사(현 한국토지주택공사)를 사업 시행자로 선정했습니다.

하지만 예상했던 사업이 지연되면서 주민들의 민심이 좋지 않습니다. 분위기도 좋지 않은데 카메라를 들이미는 사람들이 곱게 보일리 없습니다. 누구냐, 왜 자꾸 오냐는 주민들이 적지 않습니다. 촘촘하게 붙은 집이나 이 곳 분들의 삶은 여유없어 보입니다. 담이 따로 없는 동네 골목에서 무시무시한 담벼락을 발견했습니다. 병을 깨서 밤손님을 경계한 것인데요, 자세히 보니 고만고만하게 생긴 대성주택과 규모가 다른 집입니다.


비오는 어느 날, 대성주택을 다시 찾았습니다. 모충교 맞은 편 언덕을 올라 우회전을 하면 대성주택 경로당으로 이어지는데요, 그곳의 밤풍경은 낮과는 또 다른 얼굴입니다. 밤이 되면 자동차들도 양쪽으로 다닥다닥 붙어있습니다. 자동차들이 길 양쪽으로 세워져 도저히 돌아나올 수 없을 만큼 촘촘해집니다. 한 번 들어가면 후진하지 않고는 돌아나오기도 힘이 듭니다. 비오는 날 자정 넘어 찾은 대성소길엔 인적이 드뭅니다. 담이 높아 낮에도 그늘이 깊은 이곳, 밤이 되니 가로등 불빛에 기댄 밤골목의 그림자도 깊어 보입니다.

모충동에선 대문과 대문 사이 골목 폭이 한 발짝도 안되어 보입니다. 벽도 높고 대문도 높아 그늘 깊은 곳이 모충동입니다. 쓰레기가 뉘집 옥상에 그대로 버려져 있고, 깨진 시멘트 골목 바닥에선 억센 풀들이 제멋대로 자라납니다.

시간이 멈추어선 마을은 쌍샘과 대성주택을 말하는 것이겠죠. 다닥다닥 붙은 슬레이트 지붕들 사이로 저 멀리 '셋방'이라는 글씨가 보입니다. 이곳에선 1960년대도 보이고 1970년대도 보이고 1980년대도 보이고 2000년대도 보입니다. 20세기와 21세기의 애매한 경계에서 시간을 품고 있는 동네가 모충동입니다. 자동차가 다니는 큰 길을 지나는 사람은 아마도 절대 모를 숨은 풍경이 많은 곳이 모충동입니다.

자전거도 다니기 어려운 골목, 사람만이 다닐 수 있는 골목...이끼낀 담벼락과 깨어져 움푹 패인 길바닥이라지만 수풀우거진 그 골목, 그 길은 집과 집, 사람과 사람을 이어 인정을 공급하는 모충동 사람들의 동맥과도 같은 길일 것입니다.

http://blog.naver.com/2g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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