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에는 이런 영화들을 만나고 싶다.
 무엇보다도 먼저,「박하사탕 같은」 영화. 스탠리 큐브릭의 「시계태엽장치 오렌지」에서 말콤 맥도웰이 당했던 꼭 그것처럼, 관객들은 핏발 선 눈으로 스크린을 노려봐야 했었다. 그래서 고통스럽기도 했고 혹은 돌아서는 발걸음이 휘청거리기도 했지만, 「박하사탕」 같은 영화를 만나는 일은 단언컨대 행운이라고 해야 했다. 그건, 영화가 단순히 팝콘, 오징어와 함께 하는 2시간짜리 여가활용만은 아니며, 영화를 통해 가장 치열하고 절절하게 역사와 조우할수 있다는 드문 경험이 됐으니까. 그러니 가슴에 돌이 얹힌 것처럼 몇날 불편함을 감수하는 한이 있더라도, 다시한번 만나고 싶다. 「박하사탕 같은」 영화를.

 물론 홍상수감독의 영화를 보는 일은 썩 유쾌하지 않다. 아니 상당히 불쾌하고 심지어는 역겹다고 해야 할까. 그럼에도 하릴없이「홍상수 영화」들을 기다려야 하는 건, 바로 그 스크린속에 우리들의 나신(裸身)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수정」을 만나면서 우리는 낄낄대면서 수치스러웠고, 누가 볼세라 걱정스러워면서도 슬금슬금 피어오르는 피학적 쾌감에 남몰래 몸을 떨었었다. 원래 하루 종일 가면을 썼던 배우는 잠자리에서 만나는 자신의 맨 얼굴이 더 낯선 법이다. 그런 진실과의 조우야말로 두려움과 저어감 속에서도 「오!수정 같은」 영화를 기다릴수 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하지만 아무리 희망사항이라고 해도,「공동경비구역 JSA 같은」 영화를 올해도 만나고 싶다고 소망할수는 없을 듯하다. 어떨 땐 현명하지만 어떨 땐 턱없이 무책임한 관객들과 이렇게 기적적으로 소통할수 있다는 건, 그저 몇년에 한번 찾아오는 행운이어도 족할 법하니까.

 그렇다면 올해 반드시 만나고싶은 영화는 바로 「반칙왕 같은」 영화가 아닐까 싶다. 비록 경천동지할 흥행대박은 아니지만, 영화의 산업적측면과 관객들의 감성적자극이란 두 마리의 토끼를 너끈히 잡았던 영화. 우리네 남루한 삶을 살뜰한 애정으로 격려하면서 다시 추스르고 일어설 힘을 던져주던 「반칙왕」의 웃음과 페이소스는, 너나 없이 힘들고 벅찬 살림살이에 가장 절실한 선물이 될수 있을 것 같다.
 혹은 올해에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도전적인 패기와 신선함을 만날수 있을까. 간헐적으로 등장하는 「주목할만한 데뷔작」들 중에서도 군계일학처럼 돋보이는 열혈 시네마키드의 등장은 언제라도 쌍수를 들어 환영할 만한 일이다. 물론, 「순애보」처럼 2년차 징크스를 자기 방식대로 극복하고 작가적 가능성을 효과적으로 알린 작품을 만나는 일 또한 즐거움이 클것 같다.

 여기에 더해 거의 싹쓸이 형국으로 진행되는 한국영화계의 세대교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장인적 원숙함과 작가적 존재감을 과시하는 「춘향뎐 같은」 영화를 다시 보고싶다. 패기도, 열정도, 도전의식도 필요하지만 깊이 삭힌 세월의 진중한 맛이야말로 우리 영화에서 반드시 보충돼야하는 에너지가 아니었던가.
 물론 절대,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영화들도 있다. 「단적비연수」처럼 관객의 인내심을 시험하다 못해 모독하고야 마는 영화들. 걷지도 못하면서 뛰려는 당찮은 욕심을 부렸던 신인들의 어설픈 데뷔작들과, 나잇값도 못했던 중진들의 영화들은 정말이지 올해는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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