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섭 논설위원

지난주 인터넷 온라인을 뜨겁게 달군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첫째는 20대에 무직이지만 최고급으로 치장하고 호화롭게 사는 '4억 명품녀'사건이었고, 두 번째는 홀로 3남매를 키우던 '흑진주 아빠'가 생활고로 목숨을 끊었다는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먼저 7일 케이블 공중파 방송에 소개되면서 네티즌들의 분노를 일으킨 사건은 4억 명품녀의 이야기였다.

'20대 패션문화' 주제의 한 케이블 방송에 출연했던 그녀는 "부모가 주는 용돈으로 산다. 명품을 좋아해 수십 억 원상당의 명품을 보유하고 있다. 지금 (몸에) 걸친 것만 해도 4억 원이 넘는다"고 말해 '4억 명품녀' 별명을 얻었다.

네티즌들의 비난이 빗발치자 그녀는 "실컷 나불대라. 아무리 '열폭'(열등감 폭발)해도 눈 하나 깜짝 안 한다. 난 내일 일본의 명품매장 밀집지역인 롯본기힐즈에 가서 실컷 놀다 올거다"라는 조롱성 댓글을 자신의 미니홈피에 올려 더욱 네티즌들의 화를 돋웠다.

분노한 네티즌들이 그녀를 '무직 명품녀', '개념상실 명품녀'로 몰아붙이는 동안 세무조사를 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그 과정에서 부모에 대한 세무조사가 시작되자 그녀는 기자회견을 자청했고 변호사를 통해 고소의사를 밝힌 뒤 "한국에서 내 인생은 다 끝났다. 한국을 뜰 생각이다"고 말해 우리를 더욱 슬프게 했다.

두 번째 사연은 KBS 2TV '인간극장'에 출연, 시청자들에게 소개됐던 흑진주 아빠 황모씨(40)가 투신자살한 사건이었다.

아프리카 가나 출신의 부인과 결혼해 3남매를 낳고 행복하게 살던 황씨는 그 후 아내가 뇌출혈로 숨지자 빚더미 속에서도 홀로 3남매를 키우는 안타까운 사연이 2008년 7월 '인간극장'에 알려지면서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었다.

당시 브라운관에 비친 3남매는 엄마를 닮았는지 까무잡잡한 피부에 곱슬머리의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자라고 있었다. 그런 황씨가 2년 후 부산 태종대의 절벽 검푸른 바다로 뛰어 내려 숨졌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남은 애들은 어떡하냐?"면서 발을 동동 굴렀다.

사고소식을 듣고 부산으로 내려간 도담(12·여), 용연(11), 성연(10) 세 남매는 엄마 따라 저승에 간 아빠에게 큰절을 올리면서도 현실로 느껴지지 않는지 눈물조차 흘리지 않았다.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는 "흑진주 3남매를 돕고 싶다" 는 청원의 글이 오르자 15일 현재 서명자가 580여명을 넘어섰다.

'인간극장'의 시청자 게시판에도 흑진주들을 정기 후원하겠다는 네티즌들이 잇따랐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필자는 명품녀를 다룬 방송이 못내 못마땅했다.

속은 온통 쓰레기인 한심한 여자를 명품녀로 소개해서 사회에 위화감만 조성하는 저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느 네티즌의 말처럼 찍는 여자는 철부지라지만 개념 없는 방송사는 도대체 무엇인가.

'쓰레기녀'라고 불러도 시원찮을 것을 '명품녀'라 표현한 세간의 호칭도 메스껍긴 마찬가지였다.

양극화된 사회의 단면을 극명하게 드러낸 두 사건을 보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후반기 국정과제로 내세운 '공정한 사회'라는 구호가 씁쓸하게 느껴졌다.

와중에 조금 위안이 됐다면 "세상은 아직 따뜻하다는 것을 흑진주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는 청원자들의 따뜻한 서명 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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