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완 농협 청주교육원 교수

우리는 말의 홍수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요즘처럼 말 많은 시대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말을 폭포수처럼 쏟아 붓는다. 말을 많이 하는 것이 남을 이기고 힘 있는 자의 특권이라 여긴다. 상대적으로 말이 없음은 경쟁의 논리에서 처진다는 패배심리가 깔려있다. 세상살이는 말의 많고 적음 보다 어떤 말을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주변에 말하고 싶은 사람이 많은 만큼 말을 많이 들을 수밖에 없다. 귀를 열어놓고 듣다보면 듣기 좋은 말도 있고 듣기 싫은 말도 있다. 듣기 좋은 말을 들을 때는 입 꼬리가 올라가고, 듣기 싫은 말을 들을 때는 입 꼬리가 쳐진다. 듣기 좋은 말은 기분을 좋게 만들기 때문에 많이 듣고 싶어 한다. 듣기 싫은 말은 기분이 상하기 때문에 멀리하고 싶어 한다.

그 많은 말들 중에 듣기 좋은 말만 들으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그런 세상은 지금까지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듣기 싫은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다. 입에 쓴 게 약이 되듯 귀에 쓴 소리가 세상살이의 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기업들의 마케팅에도 고객의 쓴 소리를 듣기 위한 전략이 숨어있다. 불만 고객의 쓴 소리를 귀담아 듣고 이를 기업경영에 반영한다. 불만 고객 1명이 예비고객 20명에게 좋지 않은 쪽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들도 쓴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상대방의 쓴 소리는 나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다.

주변에 쓴 소리를 전해주는 사람이 많은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듣기 싫은 소리가 자존심에 상처를 줄 수도 있다. 요즘 세상살이가 가뭄에 땅이 갈라지듯 쓴 소리의 상처로 마음이 멀어져 힘들다고 한다.

일상에서 싫은 소리나 쓴 소리를 참아가며 잘 듣기는 쉽지 않다. 상대방에 대한 예의를 생각해 손으로 귀를 틀어막지는 않지만 마음의 귀는 이미 닫혀있는 상태이다. 듣고 있는 것 같지만 건성이고 흘려듣게 된다. 소귀에 경을 읽는 꼴이다. 상대방이 쓴 소리를 하면 귀를 닫기보다 활짝 열어놓아야 한다. 쓴 소리를 듣는 것은 개인과 사회의 변화와 성장의 지름길이다.

상대방의 쓴 소리에는 내 입을 틀어막는 마력이 들어있다. 쓴 소리는 귀를 막는 것을 넘어 입도 다물게 만든다. 쓴 소리를 들으면 화가 치밀어 말하기를 포기하기 일쑤이다. 쓴 소리에 입이 다물게 되는 현상을 경계해야 한다.

삶에 정답이 없듯이 쓴 소리와 단 소리도 어떤 말이 더 옳고 그른지 단정질 수 없다. 듣기 좋은 말이나 듣기 싫은 말도 공기, 물, 불, 땅처럼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이다.

듣기 싫은 소리와 쓴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가을이면 좋겠다. 쓴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보겠다는 생각만으로 세상이 품안에 들어오는 행복감을 느낀다.

풀벌레 소리가 가을밤의 정취를 더 아름답게 만들듯 쓴 소리가 세상의 온갖 갈등을 풀어주는 해법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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