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섭 〈논설위원〉

연초에 영재(英材)의 산실이라는 카이스트(KAIST)에 입학했던 한 공고생이 자살을 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8일 오후 대전 유성구 카이스트 내 건물 보일러실 앞에서 A(19) 군이 오토바이 위에 엎드려 숨져 있는 것을 이 학교 대학원생이 발견,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A 군의 방에는 다수의 빈 수면제통이 발견됐으며, 그는 숨지기 직전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죽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조사결과 A 군은 이번 학기 일부 과목에서 학사경고를 받았고, 최근 여자 친구와 결별을 괴로워했다고 한다.

지난해 KAIST의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입학한 그는 2007년 국제 로봇 올림피아드 한국 대회에서 대상인 과학기술부 장관상 수상과 이듬해인 2008년에는 국제 로봇 올림피아드 세계 대회에서 3위에 입상하는 등 초등학교 때부터 다수의 로봇분야 관련 대회에 참가해 뛰어난 실력을 발휘한 영재였다.

인문계 고교를 다니다 로봇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려고 로봇 기능 전문계고에 전학할 정도로 열정을 보였던 그는 입학사정관 제도를 통해 당당히 카이스트에 입학했지만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에 상당한 부담을 느꼈다는 게 경찰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의 자살 원인은 영어수업에 대한 부담과 여자 친구와의 결별에 따른 괴로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어느 것이 더 부담을 주었는지 모르나 경찰 조서 내용으로 볼 때 영어수업에 대한 부담이 더욱 컸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때문에 대한민국의 허술한 영재 교육 시스템이 아까운 인재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흔히 세계적으로 유명한 위인들이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어찌되었을까 하는 상상들을 하곤 한다.

예컨대 한국과 같은 교육환경에서 태어났다면 에디슨은 철물점 주인이 되었을 것이며, 다윈은 밀렵꾼으로, 아인슈타인은 자장면 배달원으로, 노벨은 엘지화학에 취업하는 정도에 그쳤을 것이라는 비판들을 한다. 또한 마돈나는 딴따라로, 나폴레옹은 키가 작으니 루저가 되었을 것이고, 잔다르크는 부억떼기로, 세익스피어는 이름 없는 만화가로 끝났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자살한 A군을 생각하면 그보다 더 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로봇 영재의 꿈도 피워보기도 전에 영어실력이 달려 자살하는 사회가 바로 한국사회이고, 한국의 교육환경이기 때문이다.

카이스트에서의 영어수업은 로봇영재가 되기 위한 과정은 될지언정 모든 것에 우선할 수는 없다.

이는 수능이 대학 입학을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 인생의 모든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영어수업이 로봇영재를 자살로 내몰았다면 이는 앞뒤가 뒤바뀐 것이다.

가까운 이웃 일본에서는 최근 노벨상을 받은 사람들이 영어를 못해 인터뷰에 응하지 못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카이스트는 최근 학점이 낮으면 일정 단위로 벌금처럼 등록금을 더 내도록 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학점이 등록금과 연동이 되니 학생들의 학점 스트레스는 클 수밖에 없다.

종전과 다른 수업료 제도로 인해 매년 휴학생과 자퇴생 비율이 치솟고, 학업에 대한 중압감으로 군대로 도피하는 학생들도 있다고 하니 하인리히 법칙으로 미루어본다면 이번 자살도 예견된 사고가 아닐 수 없다.

본말이 전도된 교육환경으로 더 이상 영재들이 희생되는 일이 없는 카이스트로의 변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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