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정문섭 〈논설위원〉

구제역이 온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살처분으로 매몰되는 가축과 축산 농가들의 절규가 온 산하를 피눈물로 뒤덮고 있다.

구제역 발생 65일째, 살처분된 소 돼지 등 가축 수는 300만 마리에 이르렀고, 보상비까지 합치면 피해액은 3조원을 훌쩍 넘어섰다.

간접피해액까지 따지면 수십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방역현장에 투입된 공무원만도 하루에 7천여 명 수준, 그 중 5명은 방역 과정에서 목숨까지 잃었다.

공무원의 전유물이 되다시피 한 구제역 방역은 지방행정의 업무공백 현상마저 불러오고 있다.

3교대 등으로 운영되는 공무원들의 계속된 현장투입으로 자치단체의 업무도 마비 지경이다.

민족의 명절 설날은 다가오고 있지만 축산농가와 자치단체장들은 구제역 확산을 막기 위해 자식들도 내려오지 말도록 권유하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구제역이 처음 발생한 것은 지난해 11월 29일, 경상북도 안동시 서현양돈단지 내 한 농가에서다.

그러나 25일 방영된 'PD수첩'에 따르면 안동에서 구제역 의심신고가 최초로 접수된 것은 농림수산식품부의 공식 발표와는 달리 엿새전인 11월 23일이었음이 드러났다.

'PD수첩'이 단독 입수해 방영한 11월 23일부터 28일까지 6일간 안동 서현단지 내 구제역 발생 농장을 드나들었던 축산관련업자의 현황을 파악한 내부문건에 따르면 총 20여명의 수의사, 축분업자, 사료운송업자 등이 안동의 구제역 양성판정 농가를 들렀다가 경기, 강원, 경북 일대의 총 80여개 지역을 방문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 상황에서도 서현양돈단지의 돼지들은 엿새간 경북 군위와 강원 원주에 지속적으로 출하됐고, 원주의 도축장에는 6일간 강원지역을 포함해 경기, 충북 등 각 지역의 출하차량이 드나들고 있었다.

파주의 분뇨처리 시설업체에서도 두 차례나 서현양돈단지의 최초 발생 농가를 다녀간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니 초기 방역차단에 구멍이 뚫린 안동발 구제역의 전국적 확산은 이미 예정된 수순이나 다름없었다.

이날 PD수첩은 2000년 봄, 파주에서 발생한 구제역을 20일 만에 종식시켜, 세계에서 구제역을 가장 성공적으로 진압한 모델국가로 인정받은 사례를 소개했다.

당시 김성훈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새벽 2시에 국방부 장관 공관으로 전화해 출입통제를 위해 도와달라고 하자 2시간 후인 새벽 4시쯤 군 병력이 동원됐다"고 진술했다. 그 결과 김대중 정부는 '방역은 제2의 국방'이라고 규정하고 구제역 방역에 나선 결과 30억 원의 손실과 2,200마리의 살처분으로 완전 진압하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이번 정부는 구제역의 창궐로 일손이 달려 지방자치단체들이 병력지원을 요청했는데도 군 당국은 "군인 부모들이 반대해 어렵다"고 난색을 표했다는 것이다. 결국 지난해 12월 30일이 되어서야 대통령이 처음으로 군 동원의 필요성을 언급했고, 이후 군 병력이 실질적으로 현장에 투입된 것은 구제역 발생 54일 만인 2011년 1월 15일이었다.

재래시장은 폐쇄되고, 공무원들은 환청에 시달리고, 축산 농가들은 피눈물을 흘리는 등 '삼천리금수강산' 대한민국은 건국 이래 최대의 국가적 재앙으로 초토화되고 있다.

구제역은 그래도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데 정부당국의 방역대책은 문제투성이인 역학조사 방식과 매뉴얼을 놓고 아직도 갈팡질팡만 거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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