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정문섭 논설위원

"정치의 근본은 무엇입니까?"

자공(子貢)의 이 같은 질문에 공자는 "식량을 비축하고, 군대를 충분히 기르며 백성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라고 답한다.

자공이 다시 말하기를,"만부득이 그 중에서 한 가지를 버려야 한다면 어떤 것을 먼저 버려야 하느냐?"고 묻자 공자는 "군대를 버려야 한다."고 답한다.

이어서 "다시 한 가지를 더 버려야 한다면 나머지 둘 중에서 어떤 것을 버려야 하느냐?"는 질문에 "먹을 것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공자는 이처럼 "백성의 신뢰를 잃으면 모든 정치 기반이 무너지기 때문에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되어도 백성의 신뢰를 잃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을 놓고 온 나라가 벌집을 쑤셔놓은 것처럼 시끄럽다.

충청권에 입주하기로 되어 있었던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공약을 백지화하고 원점에서 다시 논의키로 했기 때문이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는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당시 대전의 대덕연구개발특구와 충남 연기·공주의 행정중심복합도시, 충북 오창·오송단지를 하나의 광역 경제권으로 묶어 '한국판 실리콘밸리'로 만들겠다고 충청권 공약으로 제시한 사업이었다.

2008년 7월 충북도에서 도정보고를 받으면서도 이 대통령은 "국제벨트는 충청권 위주로 해야 하며 관계 장관들도 같은 생각"이라고 재차 강조했었다.

그러나 이 같은 생각은 세종시 수정안이 무산되자 서서히 변질되기 시작하더니 지난해 12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국회에서 처리하면서 충청권으로의 입지를 아예 명시하지 않았다.

급기야는 지난 1일 신년 방송좌담회를 통해 "과학벨트 충청권 유치는 공약집에 있었던 것도 아니며 선거유세에서 충청도에서 표를 얻으려고 말한 것."이라고 공식으로 입장을 번복했다.

그러자 대구·경북과 광주·전남, 경남, 경기도 등이 과학벨트 유치경쟁에 뛰어들면서 온 나라가 국제벨트 쟁탈전에 돌입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포항에 1천억 원을 들여 3세대 가속기를 업그레이드하고 차세대 방사광 가속기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지자 충청권에서는 "국제벨트도 결국은 형님벨트로 주려는 수순이 아니냐?"면서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는 충청권에서 요구한 것도 아니었다. 세종시와 마찬가지로 이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내걸었던 사업이었다.

그런데 세종시 수정안이 무산되자 이번에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공약 파기로 충청권 주민들을 또다시 분노케 하고 있다.

약속을 어기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약속한 적이 없다고 거짓말까지 하는 것이다.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이라 했는데 이 대통령은 자신의 공약을 남아일언 풍선껌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필부필부도 지키고 있는 약속이거늘 천금보다도 더 무거운 국민과의 약속을 온 국민이 지켜보고 있는 공개석상에서 표 좀 얻기 위해 한 것이라고 너스레를 떠는 것을 보면 말이다.

국민화합을 이끌어야 할 대통령이 공약파기를 통해 국론분열을 스스로 자초하는 저의가 무엇일까.

혹 시중에 도는 이야기처럼 국제벨트를 형님벨트로 넘겨 고향 대통령으로서의 본분에 더욱 충실하고 싶은 때문일까.

개인이 거짓말을 하면 그 피해는 당사자에게만 영향을 미치지만 대통령이 거짓말을 하면 그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진다.

지금이 꼭 그 꼴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보면서 양치기 소년이 자꾸만 오버랩 되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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