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중 전 제천시 의원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여전히 팍팍하지만 이번 설에도 정치인들은 어김없이 민심을 파악하고 수렴한다면서 고향과 서민생활 현장을 다투어 찾았다.

물론 나름대로는 깨닫고 다짐한 바가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의례적이거나 자기 과시 또는 표 관리를 위한 나들이를 하면서 민심 운운한 경우도 적지 않았을 듯하다.

정치 및 입법 현안으로 부각돼 있는 것들, 이를테면 개헌, 무상급식, 과학벨트 입지 선정 등은 폭발성을 지닌 난제들이다. 물가급등, 전세대란도 민감한 문제이긴 마찬가지다.

정말로 진지하게 민심을 들었다면 국회 구성원 모두가 한마음으로 파행 없는 임시국회를 이끌어야 할 것이다.

요즘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개헌 욕구가 집요하다. 당내 함께 내일로 라는 모임에서 간담회를 갖고 개헌 공론화를 본격화했다.

금명간 개헌의원총회도 열 모양이라고 한다. 개헌 전도사로 자처하는 이재오 특임장관이 진두에 나섰다.

이재오 장관은 2007년 1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원 포인트 개헌을 제안한 뒤 같은 해 4월 여야가 당론으로 차기 정부에서 개헌을 추진키로 확정했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개헌이야말로 18대 국회의 책무임을 강조하자는 말이다.

그렇다면 당시의 개헌 당론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압박 때문이 아니라 한나라당의 자발적 결정이었다는 합의된 고백부터 하는 게 순서일 것 같다.

이재오 장관은 이명박 대통령이 그렇게 개헌을 얘기해도 국회와 당에 자신의 뜻이 잘 전달되지 않는다고 생각해 최근 직접 국민과 대담했다고까지 밝히기도 했다.

역으로 보면 그간 청와대 관계자들의 말은 오락가락했지만 기실 이명박 대통령이 개헌 논의를 주도했고 이재오 장관이 한나라당 설득을 담당했다는 의미가 된다.

물론 헌법 개정의 여지는 언제나 열려 있다.

문제는 그 의도와 시기와 내용이다. 이 시점에 나오는 개헌론은 자칫 현 정권 담당자들의 임기 후 안전대책으로 비칠 수가 있다.

바로 그 목적으로 헌법상의 권력구조 변경이 5공 말기 이래 끊임없이 정권 실세 측 인사들에 의해 시도돼 왔던 것이다. 뜻이 순수하다면 이 부분을 제외한 개헌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힐 수 있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한나라당 고위관계자들과 만찬을 하면서 권력구조 같은 문제만 논의하지 말고 헌법 조문 전체에 걸쳐 시대와 상황의 변화를 반영시켜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권력구조 논의를 배제해도 좋다는 의미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핵심은 권력구조 변경이지만 이 점이 두드러지지 않게 하라는 주문이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개헌은 정치인들의 신분, 지위, 이해 등에 직접적인 영향이나 변화를 초래하는 작업이다.

오직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개헌이라면 개헌안 마련 과정은 민간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바람직하다. 국회는 의결권만 가져도 충분하다.

어쨌든 지금 이명박 대통령은 레임덕을 우려할 만한 임기 4년차에 접어들었다.

진정성을 가지고 정말로 개헌을 원한다면 민간 전문가들에 의한 합리적 초안을 빨리 만들어 공론화시키는 게 옳다고 본다. 자꾸 운만 떼는 정도로는 개헌도, 국정수행도 어려워진다는 것을 명심할 일이다.

국회는 어떤 문제든 국민을 위해 형식과 절차에 구애 없이 심의하고 결론을 도출해내는 의사결정의 장이다.

그리고 대결을 토론으로, 투쟁을 대화로 바꿨다는 데 대의민주정치의 의의가 있다.

우리 국회도 이제는 의회정치의 원론에 충실해질 때가 됐다.

정치현안과 입법과제들을 완급을 가려, 또 민주적 의사결정 방식에 따라 풀어나가는 성숙된 모습을 보여주기를 국회와 정당들에게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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