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식 농협청주교육원 교수

중년(中年)은 청년(靑年)과 노년(老年)의 중간으로 보통 40대에서 50대까지를 지칭한다.

중년기는 급격한 호르몬 변화를 겪으면서 신체적·정신적 전환기를 맞이한다는 점에서 사춘기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청년기의 사춘기가 육체적인 성장에 초점을 맞추는 데 반해, 중년에는 정신적인 성장에 더 집중한다는 것이다.

중년은 나를 싸고 있던 거추장스러운 포장지를 모두 벗겨내고 비로소 본래의 나와 마주할 수 있게 하는 시기다.

아기의 탄생이나 사춘기의 탄생처럼 공개적인 축하를 받지는 못하지만, 안에서부터 조용히 시작되는 내면의 혁명이다.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삶이 새롭게 시작되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꿈꾼다. 끝없이 성장할 수 있는 내면의 힘도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꾸준히 성장을 해 나가는 반면, 또 어떤 사람들은 늘 같은 자리에서 그만그만한 모습으로 허우적거리고 있는 이유가 무얼까?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은지, 무엇을 할 때 가장 즐거운지를 모르기 때문은 아닐까?

상대가 소중한 사람이라고 해서 무조건 상대의 취향에 맞추다 보면 내가 없어진다. 그렇게 되면 아마 상대방도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우선 '나'를 세워야 '너'를 만날 수 있는 접점이 생긴다.

내가 없으면 상대방에게 집착하거나 흡수될 수밖에 없고, 이런 만남은 건강할리 없기 때문이다.

나의 이야기를 반추하며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 정말 내가 하고 싶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기까지는 어쩌면 나는 아직 내가 아닌지도 모른다.

나의 기질과 강점이 녹아들어 기꺼이 만족하며, 그 과정에서 나도 행복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을 찾기까지는 아직 나의 삶은 진짜가 아닌지도 모른다.

이 넓은 세상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출렁대던 젊음은 사라졌지만 체험에서 나오는 여유와 자심감을 가질 수 있는 중년은 인생의 터닝포인트다.

젊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그 나이에 무슨 재미로 살까 싶은 때에도 얼마든지 즐거움과 도전이 가능한 것이다.

젊을 때는 넘치는 에너지를 체계화하기 어렵고, 터무니없는 꿈과 진정한 소망을 구분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젊은 시절에는 배울 수는 있으나 노련해 지기는 어렵다.

배움을 내 것으로 흡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직접 체험으로 걸러져야 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경험을 통해 불필요한 것들을 점점 줄여서 본질에 이르는 과정이다.

나이가 들면 에너지의 총량은 감소할지 몰라도 에너지의 효율적인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더 많은 성취를 할 수 있다.

우리가 인생을 가치 있게 살기 위해서는 누군가에게 무엇이 되어야 한다.

아픈 사람에게는 치유가 되어야 하고, 지혜가 부족한 사람에게는 지혜가 되어야 하며, 사랑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감동이 되어야 한다.

가치 있는 인생은 누군가에게 또 다른 가치를 만들어 준다.

누군가에게, 어딘가에 의미가 있는 일이라면 그 의미에는 경중이 없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그것이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닌, 앞으로 나와 같은 이상을 추구해 가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이라면 충분히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철들자 망령'이라는 말처럼 일말의 깨달음을 얻는 순간 곧이어 쓸쓸히 퇴장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다시 고쳐 살아볼 시간을 갖게 되었다는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층 성숙해진 인생의 제2막을 시도할 수 있는 행운을 갖게 된 것이다. 비록 육체적인 젊음은 사라졌지만 다양한 체험을 통하여 정신적 젊음을 되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누군가에게 의미가 되고 도움이 되는 삶,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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