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한병선 교육평론가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합니다. 물려받은 책으로 공부를 하고 우리는 언니 뒤를 따르렵니다.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갑니다."

이제 이런 졸업식은 옛날 풍경이 된지 오래다. 기억 속에 남아있을 뿐, 요즘에는 말썽 없이 지나가면 다행이다. 밀가루를 뿌리고 계란을 투척하는 모습은 차라리 애교에 가깝다. 언제부턴가는 후배들에게 알몸을 강요하고 친구를 바다에 던져 버린다. 이뿐만 아니다. 심지어 폭력을 휘두르기도 한다.

이러니 다시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올해는 좀 달라져야 하는데…, 그렇다고 과거처럼 송사나 답사가 이어질 때 눈물을 흘리며 울었던 모습을 기대는 것은 아니다. 사제 간, 친구 간 헤어짐이 아쉬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던 모습을 연출해 달라는 주문도 아니다.

한바탕 흐드러지게 노는 축제의 장이 되어도 좋다. 친구들과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출사(出師)의 모습이면 더욱 좋다. 다만, 더 이상 폭력적인 뒤풀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팍팍했던 학창시절을 털어버리고 싶어도, 아무리 해방감이 넘쳐도 그런 식의 통과의례가 되어서는 안 된다.

# 졸업은 '새로운 시작과 도전'

졸업은 학업을 종료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코멘스멘트(commencement)'라는 말에서 보듯 새로운 시작의 의미다.

졸업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란 것. 상급학교로의 진학도 그렇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도 그렇다.

모든 것이 졸업을 통한 새로운 시작이 아니던가. 졸업을 단순히 마침으로 생각해서는 안 될 이유다.

이런 점에서 졸업은 오히려 더 많이 고민하고 더 많이 사유해야 하는 통과의례가 되어야 한다.

자신의 생애설계를 놓고, 자신의 진로문제를 놓고, 자신의 미래를 탐색하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를 내면에 집중시키는 시기가 되어야 한다.

더하여, 자연은 물론 역사와도 대화를 터야 한다. 그런 사람만이 스스로를 진정한 청춘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청춘을 예찬하지 않던가.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 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巨船)의 기관같이 힘 있다. 이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꾸며 내려온 동력은 꼭 이것이다. 이성은 투명하되 얼음과 같으며, 지혜는 날카로우나 갑 속에 든 칼이다.

청춘의 끓는 피가 아니더면 인간이 얼마나 쓸쓸하랴? 얼음에 싸인 만물은 죽음이 있을 뿐이다.

# 청춘의 의미 다시 새겨보길

이상! 빛나는 귀중한 이상, 그것은 청춘이 누리는 바 특권이다. 그들은 순진한지라 감동하기 쉽고 그들은 점염(點染)이 적은지라 죄악에 병들지 아니하였고, 그들은 앞이 긴지라 착목(着目)하는 곳이 원대하고, 그들은 피가 더운지라 현실에 대한 자신과 용기가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상의 보배를 능히 품으며, 그들의 이상의 아름답고 소담스러운 열매를 맺어 우리 인생을 풍부하게 하는 것이다."

수필가 민태원의 청춘예찬이다. 청춘은 이런 것이다. 거선의 기관과 같이 힘이 있고 인류의 역사를 꾸며 내려온 동력이 될 수 있다.

폭력을 휘두르고 친구를 바다에 던지는 것이 청춘이 아니다. 그것은 빛나는 귀중한 이상이며 청춘이 누리는 바 특권이다. 졸업에 즈음하여, 나아가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하여 학생들에게 다시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은 청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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