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광섭 청주공예비엔날레 부장

현대인에게 디자인이란 무엇일까. 서울의 국제교류재단에서 열리고 있는 '일본 현대 디자인과 조화의 정신'특별전을 본 뒤 KTX에 몸을 실은 나는 디자인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일상을 전통과 현대, 그리고 예술 및 디자인과 조화시킨 일본인들의 노력을 보면서 가슴이 징했던 것이다.

미래학자 마티아스 호르크스는 '인류의 발자국이 곧 디자인'이라고 했고 영국의 대처 수상은 1979년 취임 후 첫 각료회의에서 '디자인을 하던지, 아니면 사퇴하라'며 침체된 영국경제를 살릴 대안으로 디자인이라는 창조산업을 제시했다. 개인과 기업과 국가 모두가 디자인을 강조하고 디자인을 통해 새로운 미래비전을 제시하고 있으니 올해도 디자인을 빼고는 그 무엇 하나 이루어 낼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생명력으로 가득한, 차별화된 디자인의 조건은 무엇일까.

사람과 스토리, 그리고 소통과 융합의 시대정신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한다.

산업화 시대에는 어느 기업의 제품이냐를 강조했지만 지금은 누가 디자인했느냐에 따라 소비자의 발걸음이 달라진다. made in 시대에서 design by의 시대로 전환한 것이다.

나이키에 밀려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푸마를 살린 것은 독일의 유명 디자이너 질 샌더를 영입하면서부터였고, 스웨덴 중저가 의류 업체 H&M은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 출신 칼 라거펠드를 영입하면서 매출이 급신장하였다.

샤넬, 루이뷔통, 에르메스는 프랑스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명품브랜드다.

특이한 것은 이들 브랜드는 모두 그 지역 최고의 전통장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스토리의 중요성은 스토리텔링으로 이어진다.

지포라이터의 인기는 속주머니에 넣어둔 지포라이터가 날아오는 총알을 막아줘 병사의 목숨을 구했다는 이야기 때문이고, 포드자동차는 카우보이 이야기가 담긴 디자인을 선보이면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였으며, 이탈리아 빈치는 천재 예술가 레오나르드 다빈치를 스토리로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개발했다.

소통과 융합의 시대정신도 디자인의 성과를 배가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탈리아 토리노시는 디자인으로 부활한 대표적인 사례인데 자동차 공장이 이전하면서 폐허로 전락한 도시에 가로등 자전거 주차장 등 공공디자인 마스터플랜을 수립하였으며 폐공장을 쇼핑 공연 이벤트 등 다양한 문화예술과 융합하면서 도심활성화에 성공했다.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는 디자인을 통해 우범지역이었던 도심을 문화공간으로 변신했다.

화력발전소를 콘서트홀로 개조하고 아파트를 문화지구로 개발하면서 마약과 강간 등 강력범죄 소굴에 탈출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서울의 청계천 프로젝트는 환경과 디자인이 융합한 사례로, 전주의 한옥마을은 디자인과 전통의 랑데부로 도시의 품격을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다.

디자인은 자잘하거나 군더더기를 거부한다. 국적과 시공을 초월한다. 간결하고 명료하면서도 생활에 전하는 감동이 있어야 한다.

당장의 욕망을 쫓는 것이 아니라 삶을 아름답고 윤택하게 하며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플랫폼이기도 하다.

핀란드는 박물관에나 있을법한 100년 이상 된 가구들이 실생활에서 요긴하게 사용되고 있다.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감각, 견고성과 쓰임의 가치가 돋보인다.

이탈리아는 60년대 감성디자인에서부터 21세기 하이엔드 디자인까지 "기능에 충실하되, 디자인 자체에 기교나 현란함 대신 보고 만지며 감동을 느껴야 한다"는 슬로건으로 생활속에 숨쉬는 것만을 고집하고 있다. 이것을 두고 아름다운 쓰임, 생활미학이라고 한다.

디자인은 인간과 생명을 존중하고 역사와 문화와 도시와 산업이 소통하며 새로운 미래가치를 여는 따뜻한 감성이며 시대의 자화상이다.

청주를 청주답게 만들고, 나의 삶을 맑고 향기롭게 하기 위한 첫걸음이 바로 디자인인 것이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