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중 전 제천시의원

무려 329만 마리. 국민 혈세 2조원이 투입되는 등 국가적 재앙으로 사태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하순 구제역이 발생한 지 80여일 만에 대한민국은 역사상 가장 끔찍한 가축 홀로코스트를 겪고 있는 중이다.

여기에 조류인플루엔자로 닭, 오리, 메추리 5백여만 마리가 매몰됐다. 아무리 짐승이지만 속절없이 희생된 뭇 생명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모골이 송연하다.

앞으로 구제역 확산은 축산 재앙뿐만 아니라 농업 재앙을 넘어 환경 재앙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마구잡이 매몰로 인해 지하수와 토양이 붉게 오염되고 한강, 낙동강 식수원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환경부가 한강 상류지역 가축 매몰지 32곳을 육안으로 조사한 결과 16곳에서 보완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 때문에 1조2천억원 넘는 예산을 쏟아 부었는데도 농심은 흉흉하다.

가축 전염병 하나 막지 못하는 무능한 정부라는 비난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도시에선 고기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올여름 전염병 창궐을 걱정하는 목소리까지 들린다. 가히 국가적 재앙이다.

일각에선 날씨가 따뜻해지면 구제역이 물러갈 것이라는 낙관론을 펼친다. 그런 안이한 시각으론 사태를 제대로 수습할 수 없다. 정부당국의 철저한 후속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중국, 동남아, 아프리카와 같은 만성적인 구제역 발생 지역으로 전락할 것이다.

구제역이 또다시 창궐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럴 경우 다른 나라로부터의 육류 수입을 제한하기 어려워진다. 국내 육류 제품을 수출할 때는 제값을 못 받을뿐더러 직, 간접 규제까지 감수해야 한다. 경제적 손실과 국가 이미지에 미칠 악영향이 이만저만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구제역이 천재가 아닌 인재라는 자세로 매진해야 한다. 구제역 관계 부처들은 발생 초기에 팔짱을 낀 채 농림수산식품부만 쳐다보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2000년 3월 국내 구제역 첫 발생 때 당시 김대중 정부는 방역은 제2의 국방이라며 군 병력과 장비까지 총동원했었다. 정부도 최선의 노력을 했겠지만 사태가 이렇게까지 악화된 데 대한 책임은 분명히 정부에 있다. 정치는 결과로 말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구제역 방역의 허술한 점을 종합해 보면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안동지역을 실효성 있게 봉쇄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둘째, 안동 지역을 오고간 사료차량 경유 농장과 도축장에 대한 효율적인 대책이 미흡했다는 점이다. 셋째, 전국적인 백신접종을 미뤄 사태가 악화됐다는 점이다.

구제역 재앙이 인재라고 주장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 정부가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점 또한 큰 책임이다. 자칫 한국도 구제역 상습국가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대만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벌써부터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은 지난해 4월 발생한 구제역을 강력한 행정력을 발동해 초기에 차단했다. 구제역 발생 농가 주변 10㎞를 철저하게 봉쇄하고 철저하게 예방접종 후 살 처분한 일본 정부의 적극적 대처가 주효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일본은 프랑스 파리의 세계동물보건기구로부터 구제역 청정지역으로 재지정을 받았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구제역 문제는 더 이상 각 부처별로 따로 대책을 세울 일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 농식품부, 환경부, 국토해양부, 국방부 등 관계 장관들을 모두 소집해 총체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사람도 물건도 사료도 국경을 맘대로 넘나드는 국제화 시대에 걸맞게 방역 체계를 보완하고 매몰 방식도 점검해야 한다. 이번 사태는 임기 후반에 들어선 이명박 정부의 국정 장악력을 시험하고 있다.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제대로 못 고치면 민심 이반의 후폭풍을 맞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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