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희 주부/ 서울시 서초구

영응이는 어릴 적 나의 초등학교친구다.

지금은 아쉽게도 유년시절의 추억이 깃든 고향에 오창과학단지가 들어서서 내가 살던 고향 집이며, 시냇가며 오솔길도 모두 없어졌지만 책을 보자기에서 싸서들고 그 오솔 길을 따라 학교를 다녔다. 지금도 만나면 어릴 적 동심그대로다, 이름 부르고 익살스럽게 장난치고 욕도 하고...

또 친구들이 각자 다른 일을 하고 있어 모여 서로공유하며, 시너지효과도 내는 것 같다. 하지만 물처럼 속절없이 흘러간 세월 앞에 허무함이 몰려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느새 머리엔 서리가 하얗게 내려있고, 몸은 허리를 구분할 수가 없다.

시간을 되돌려 놓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서도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기간이 아니고, 마음의 열정이라고 이렇게 스스로 위안을 삼아본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영응이네 삼형제이야기다.

요즈음 살기가 힘들어서인지, 물질만능시대에 욕심이 지나쳐서인지, 돈 때문에 형제간에 우애라는 것을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 됐다.

그런데 영응이네 집은 요즈음 보기 드문 우애가 돈독한 형제다. 몇 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그동안 삼형제가 남에게 덕이 되게 잘 살아와서 입소문으로 조문행렬이 이어져 장례를 모시고도 돈이 많이 남았다고 한다.

이 돈을 삼형제가 모여 형님은 동생인 영응이에게 다주려고 하고 동생은 '난 싫다. 10원도 싫다'고 하고, 삼형제가 서로주려고하다 안되어 형수 등 여자들을 불러 상의하니 형수님 역시 남자 분들 알아서하라고 주방으로 들어 가더란다.

평소에도 시동생에게 주는 돈은 얼마이든 말을 안 하는 형수였단다. 이렇게 삼형제는 끝이 나지 않았고, 나중에 알아보니 막내 동생이 빚이 있다는 것을 알고 800만원을 더 보태어 갚아주었다는 훈훈한 후문이다.

지난 가을 단풍구경을 가서 정자나무 밑에서 김밥을 먹었다. 영응이는 바닥에 흘린 밥알까지 줍고 있었다.

형님이 조카들과 모두 데리고, 놀러 가면 먹고 난 자리 청소하라고 회초리를 들고 있어 그것이 습관이 되버렸단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하더니 형님을 보고 동생들이 그대로 배운 것 같다.

해마다 모교인 초등학교에서 '각골한마당'이란 축제가 열린다. 이날은 60년 전통의 졸업생이 다 모여 장기자랑 등 체육대회가 열린다.

배구대회에서 우리 기수와 영응이 형님기수가 맞붙게 됐다. 영응이는 우리 동창회장이라 주장이고, 영응이 형님도 그 기수의 주장이었다.

우리 여자들도 뜨거운 햇볕에도, 응원하려 배구코트를 죽 둘러서있었다.

세월 앞에 장사가 없다더니 3년 선배 나이차가 큰지, 이길 자신이 없는지 영응이 형님인 상대편 주장이 여자들을 데려다 세워 놓았다느니, 동생한테 괜히 트집을 잡는다. 또 한쪽에선 너희들이 이겼다하고 돈으로 달라는 둥 한다. 시합은 우리가 이겼다.

영응이는 고향을 지키며 부모님을 모셨고, 현재 유기농 농사를 지으며, 오창과학단지와 청주에 유기농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유기농 농사도 정말 양심적으로, 정직하게 짓는다. 또 정이 많아서 우리가 서울에서 가면 무엇이라도 주고 싶어 안달이다.

그러나 그것이 반갑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그 한포기 한포기 자식 키우는 정성으로 키웠을 텐데... 나 역시 농촌에서 태어나 농사짓는 어려움이 어떻다는 것을 알기에 받아도 마음이 편치 않다. 마음이 고마운 친구다. 항상 건강하고 하는 사업 잘되길 기원하며, 이 의좋은 형제들이 많은 사람에게 본보기가 됐으면 하는 나의 바람이다. "영응이 삼형제 존경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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