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위원 칼럼] 박미영 서부종합사회복지관장
그런데 놀라웠던 것은 와상 상태 인줄 알았던 어르신이 사실은 아사 직전으로 너무 오래도록 먹지를 못해 기운이 없어 미동도 못하고 겨우 떠주는 미음을 삼킬 힘 밖에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일 뿐, 회복이 되자 일어나 걸을 수 있는 만큼 거동이 가능하다는 것을 아는 순간이었다. 하루 이틀만 늦게 만났더라도 정말 굶어 죽을 뻔한 위급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보다 더욱 차가운 세상을 만나게 한 것은 집 주인 아주머니였다. 집 주인 아주머니에게 "아주머니 식사 하실 때 국 한 그릇만 어르신께 나눠 드리시면 좋겠어요"라고 부탁드리자 아주 냉담한 얼굴로 "나 먹을 것도 없어"라며 돌아서 버리더라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 '세상이 참 강퍅하고 무섭구나'하고 냉담한 현실을 새삼 발견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얼마 전 한 가난한 예술인의 죽음을 계기로 국회에서는 예술인 사회안전망 확충을 위한 이른바 '최고은 법(예술인 복지 지원법)'이 여야 합의하에 통과할 전망이라고 한다.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의 죽음을 계기로 세상은 이 죽음을 사회적 타살로 명명하고 그 죽음의 원인이 단지 개인적 이유만이 아닌 사회 양극화와 빈곤 문제, 공평하지 못한 사회 등 사회적 책임에 더 무게를 두며 이러한 사회적 문제에 방관적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에게 사회적 타살의 공범으로서의 책임을 함께 물었다.
이 사건을 접하며 5년 전 아사 직전의 어르신의 모습이 다시 떠올랐고 이러한 죽음 앞에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는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던 것은 세상의 물음 앞에 사회적 안전망과 사회적 정의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회적 타살... 그리고 사회적 정의.
마이클 샐던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는 정의를 판단하는 세 가지 기준으로 '행복'과 '자유' 그리고 '미덕'을 제시하고 있다.
즉 사회구성원의 행복에 도움을 줄 수 있는지 혹은 사회 구성원 각각의 자유로움을 보장할 수 있는지,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지로 정의로움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의란 결국 우리 스스로가 누군가의 행복에 도움을 주고, 누군가의 자유를 보장해 줄 수 있도록 도우며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미덕을 행할 때 실현된다고 하는 사실을 이야기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정의로운 사회를 원한다. 우리가 원하는 정의로운 세상은 우리 스스로가 그 정의를 실천할 때에만 가까이 올 수 있다. 굶고 있는 노인을 두고 돌아서는 것은 결코 정의가 아니다. 생활 속에서 누군가의 작은 행복과 자유를 위해 거창하지 않아도 될 '정의'를 얼마든지 행할 수 있다. 모두가 실천하는 작은 정의로움들이 사회적 폭력과 범죄로부터 우리의 아이, 여성, 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과 사회적 소수자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행복과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자유를 보장할 수 있으며 사회를 이롭게 하는 미덕을 이루어 사회적 정의를 실현해 갈 수 있다.
정의로운 세상!
그것은 사회구성원인 우리 모두가 함께 이루는 세상이다.
중부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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