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용성 농협청주교육원 교수

우리는 종종 기성세대를 아날로그세대, 신세대를 디지털세대 또는 IT세대라고 부른다.

그리고 디지털 세대 중에서도 디지털 환경에서 태어나고 디지털 환경에서 성장한 90년 이후 출생자는 Net-Generation라고 부른다.

그럼, 아날로그와 디지털 세대의 차이는 무엇일까?

어떤 이는 아날로그 세대는 위에서 아래로 명령을 내리는 'Top-Down'방식을 당연시 생각하지만 디지털 세대는 'Bottom-Up'방식의 의사소통을 요구한다고 한다.

또 어떤 이는 아날로그 세대는 이상주의적이고, 표현을 자제하는 반면, 디지털 세대는 굉장히 실리적, 실용주의적이며, 이전 세대와 비교해 굉장히 솔직하고, 담백하다고 한다.

한마디로 Cool하다는 뜻인가 보다.

나는 두 세대의 차이를 기다림에서 찾고 싶다.

사람의 80평생을 돌이켜 보면, 일하는데 26년, 잠자는데 22년, 먹는데 6년을 보낸다고 한다.

그 중에 '기다리는데 보내는 시간'도 무려 6년이나 된다. 아마 아날로그 세대는 그 시간이 더 길지도 모르겠다.

나는 분명히 아날로그 세대다. 내 지난 날에는 이런 기억이 있다.

자주 오지 않는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듣고 싶은 노래를 한 곡 들으려고 방송국에 엽서를 보내 2시간 동안이나 이제나 저제나 내 신청곡이 나올까 애타게 기다린다.

그러니 길을 걷다 레코드 가게에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흘러나오면 이게 왠 횡재냐는 생각에 가던 발걸음을 멈춰 선다. 비싼 LP판 대신 일명 빽판을 사려고 청계천 세운상가 뒷골목을 누빈다.

하나 뿐인 영어사전, 옥편은 셀 수도 없는 넘김에 구겨져, 함께 했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마음을 주고 싶은 이성에게 남몰래 엽서를 보내고, '내 편지는 잘 전달됐을까? 그녀가 답장은 해 주려나'는 기다림의 시간도 있었다.

이에 비해, 우리 아이들은 너무나 쉽게, 너무도 빨리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는다. 한층 진보된 IT기술의 수혜로 구지 집이 아니더라도 길을 가면서도 자신의 의지만 있으면 바램이 즉각 충족된다. 한편 쉽게 바꾼다. 핸드폰은 1년이면 골동품 취급을 받는다. 그러니 자신만의 골동품이 없다.

이런 이야기가 생각난다. 시아버지가 애지중지하던 등산화인지 모르는 며느리가 어느 날 신발장에 오래된 등산화 여러 켤레를 지나가던 고물상에 판다.

"나 잘했죠"란 표정의 며느리에게 시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뒤돌아서 눈 시울을 적신다. 왜? 그 등산화에는 지난 날의 시아버지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 쉽게 얻은 것에는 추억이 담기질 않고, 사연이 깃들 겨를도, 담겨질 시간적 여유도 없다.

반면, 기다림에는 애틋함, 가슴이 아려 오는 인내, 자신만의 기억과 추억이 서려 있다.

갈수록 빨라져 가는 삶의 속도를 잠시 멈추고, 잠시나마 자녀들과 함께 기다림의 미학, 느림의 미학을 실천해 보자.

그리고 생각해 보자. 우리 부모들이 공부라는 커다란 둘레를 자녀에게 씌우고 자녀들을 조급함으로 더욱 밀어 넣고 있지는 않은가?

자신들은 기다리는 삶을 살아왔는데 자녀들에게는 마냥 질주하라고 하는 것은 아닌지 한번 돌이켜 생각해 볼 일이다.

사람들이 오아시스에 도달하기 전에 쓰러지는 것은 더위와 갈증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조바심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간절할수록 천천히 한 템포 늦춰서 바라보고 생각해야 한다.

눈 한번 살포시 감고, 질끈 감은 눈을 다시 뜨면, 같은 세상이건만 세상은 달리 보이게 된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